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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Jul 06. 2024

초당옥수수의 맛을 안다는 것

제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마트에 갔는데 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벌써 옥수수가 나왔네." 옥수수 킬러인 나는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껍질을 까고 노오란 알맹이가 드러난 옥수수 10개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 몇 개 쪄서 한 김 식힌 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기대와 다르게 설컹거렸다. 왜 이러지? 싶어서 옥수수를 다시 찜기에 넣고 10분 넘게 기다렸다. 하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음에도 사카린을 넣은 것처럼 몹시 달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쫀득한 식감이 아니었다. 아무리 가열을 해도 설익은 맛이 나는 그야말로 '너무 이상한' 옥수수였다.


며칠 후에야 나는 그게 '초당옥수수'라는 걸 알았다. 수도권에 살 땐 한여름이 제철인 찰옥수수만 먹어왔고 초당옥수수는 난생처음 보는 먹거리였다. 그 이후로도 초여름만 되면 마트에서 초당옥수수를 볼 수 있었지만 난 쳐다도 보지 않았다. 누가 초당옥수수를 준다고 하면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난 초당옥수수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냈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찾아먹진 않았지만 가끔 초당옥수수를 먹을 일이 생기곤 했다. 근데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그 거부감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첫인상은 진짜 별로였던 친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다가 차차 정이 들면서 절친이 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올해엔 초당옥수수가 나왔을 땐 마트에서 10개를 사 왔고 금세 동이 났다.


"초당옥수수가 이렇게 맛있었나?"


한 개를 먹고도 멈출 수가 없어서 두 개 세 개 까지 먹어서 배가 옥수수로 찰 때까지 흡입하듯 먹곤 했다. 자루로 사다 먹기도 하고 마트에 가서 사 오는 개수도 열 개에서 열다섯 개, 스무 개로 점점 늘어갔다. 이젠 그마저도 끝물이라 못내 아쉽다. 아,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내가 유난히 어려워하는 '낯선 것에 익숙해지기'. 그건 단지 초당옥수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유목민보다는 정착민으로 살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진 내가 연고 하나 없는 제주로 이주해 와서 살기 시작한 지 11년째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 삶이 제주라는 곳에서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당옥수수를 맛있게 먹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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