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이요? 아직 불혹도 안 되고 있습니다만...
“대장은 깨끗한 편이고, 위염이 심해졌는데 음식 조절하고 스트레스 최대한 받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얼마 전 받았던 위,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평소와 다르게 한번 체한 게 한 달 가까이 계속되어 몸이 점점 야위어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위 내시경과 난생처음 대장 내시경을 받아봤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의사들은 툭하면 그 얘기더라.’ 말도 안 된다고 혼자 생각하다 문득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1월에 시작된, 나이 앞에 5라는 숫자가 붙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은 한 해의 끝자락이 시작된 지금까지 11월까지 계속되고 있다. 3이나 4가 붙을 때와는 분명 다른 어색함과 당혹감이다. 내가 그렇게 오래 살았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이젠 더 적네? 10년만 있으면 환갑? 으...
우여곡절 끝에 올해 1월 1일자로 공저 책이 나오고 ‘올 한 해는 개인 책 준비를 하며 보내야지’하고 호기롭게 계획했던 마음은 온갖 흔들림으로 점점 희미해져 갔고 그간 고이고이 돌봐왔던 자존감마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이 많았다. 거기에 건강문제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요즘 내 마음을 옥죄는 뭔가가 있었어. 그게 뭔지 생각하자면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고 가슴 한편이 알싸하게 아파오지만 난 분명 무슨 이유에서인지 많이 힘들었어. 난 갱년기 증상 같은 건 없다고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지만 그렇지 않았던 거야. 뚜렷하게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들었다는 자괴감. 그거였어. 바로... 그래서 몸도 그렇게 아팠던 거야.’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난 몇 번이나 흔들리며 여기까지 왔을까? 천 번이 되려면 아직 멀은 걸까? 그럼 난 아직 어른이 아닌 걸까? 40이 되면 그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고 5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공자님의 말은 평균수명이 사십몇 살이던 2000년 전에나 통하는 말인 걸까?
그렇게 불혹, 지천명에 대해 생각하다 잘 풀리지 않는 바둑판을 뒤엎으며 앙탈을 부리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다. 지천명은커녕 불혹도 안 되면 뭐 어때? 난 나름 애쓰며 살았고 나란 사람도 꽤 괜찮은 사람 아닌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를 도닥이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여기까지 잘 왔어. 그냥 이대로도 괜찮아.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삶이라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50이라는 나이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자.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되는 듯한 일상이지만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살아가고 있으니 그걸로도 훌륭해. 다들 그렇게 고민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이지만, 그런 작은 반복이 어떤 물결을 이룬다면 거기에 몸을 실은 나는 결국 더 먼 곳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