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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Sep 10. 2024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요?

라디오를 듣지요

지난번 딸을 보내고 음악을 틀었다는 글을 올린 후 어떤 분이 질문했다. 그때 어떤 음악을 들었느냐고. 난 깊이 생각 않고 대답했다. “라디오요.” 어떤 곡들 인지도 생각이 나질 않고 그저 프로그램 이름만 기억날 뿐이었다. 오전 10시쯤이었으니 아마 KBS 클래식 FM의 '신윤주의 가정음악'이었을 거다.      


언젠가부터 라디오가 내가 음악을 듣는 주된 통로가 되었다.  예전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나 '라디오 천국'같은 프로그램을 들었다면 지금은 KBS 클래식 FM을 주로 듣는다. 한창 유행에 민감할 땐 좋아하는 DJ가 진행하는 가요나 팝송 프로그램을 들었다면, 지금은 DJ의 멘트가 조용하고 유행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클래식이 계속 틀어놓기에 부담이 없다. 그저 일상의 배경처럼. 그 배경이란 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평범한 원목 장식장이나 10년 넘게 나를 품어주고 있는 짙은 네이비색 소파처럼 튀지 않고 잔잔한 것이어야 하기에.

      

가장 애정하는 프로는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방송되는 ‘출발 FM과 함께’이다. 섬세하고 다정한 목소리의 이재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난 자연스레 그분의 팬이 되었다. 무엇하나 걸리는 것 없는 유연한 진행, 힘든 사연에는 뻔하지 않고 과하지 않게 위로를 건넬 줄 아는 따스함 때문에 마냥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 좋다. 이건 아재개그인가 갸우뚱하다 어느새 훈훈한 미소를 짓게 되는 친근한 유머감각까지 지녔으니 DJ로서는 거의 완벽하다. 클래식은 전혀 듣지 않던,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였던 그가 처음 '떠맡듯이' 클래식 방송을 맡았을 때 작품 이름들이 쓰여있는 시트가 암호 같았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4년간 (개인적인 클래식 공부와 함께 한) 진행을 하면서 이젠 대본에 없는 클래식 관련 내용도 즉흥적으로 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좋은 걸 알아보는 건 다 비슷한 모양인지 방송대상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내가 오후에 일을 하니 주로 오전부터 오후 1시경까지 라디오를 듣는데 시간까지는 DJ만 바뀔 뿐 음악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참,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퇴근길에 차에서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클래식 FM에서 방송되긴 하지만, 제목처럼 클래식 뿐만 아니라 장르, 나라 구분없이 거의 모든 음악을 틀어준다. 낯선 나라의 음악이나 가요도 들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터에서 일상으로, 낮에서 저녁시간으로 (그걸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했었나) 이어주는 통로같은 느낌을 주어서 내겐 달콤한 휴식같은 프로그램이다.         

      

라디오의 장점


1. 애쓰지 않아도 내 취향의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잊고 있던 좋아하는 음악을 마주할 때도 있다. 멜로디는 익숙한데 제목을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메모해 뒀다가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2. 처음 듣는데 강렬하게 꽂히는 곡이 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그런 곡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기억나는 곡들은 이 곡들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악장

-윌리엄 볼컴, 우아한 유령

- 코타로 오시오, 황혼

-제목을 또 까먹어 버린 러시아 왈츠곡


3. 음악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알고 보면 영화보다 흥미로운 음악가들의 뒷 이야기를 비롯해 어려운 음악용어 설명, 음악과 관련된 책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음악과 음악가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라디오로 클래식만 듣는 건 아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음악을 듣는 이야기는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 회차에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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