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앵 Oct 07. 2024

에필로그

Thank you for the music

J에게 매일 한 곡씩 음악을 보내준 지 몇달 되었는데 며칠 전 꼭 100번째 음악을 보내게 되었다. 브런치 북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100곡이 마무리 되니 왠지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한 것처럼 무언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쾌감을 느낀다.


<음악에세이집> 이라는 제목은 애정하는 출판사인 프란츠에서 나온 책 <음악소설집>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음악수필집>과 <음악에세이집> 둘 중에서 고민하다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제목으로 선택했다. 이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할 땐 주제를 잡고 지금의 내가 보내고 있는 한 시절에 대해 보여주면서 이 시절을 언젠가 맞이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음악에세이집에 실을 글을 쓰는 동안 그만큼 난 많이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빈 집에서 느끼는 공허함, 오십이 넘도록 이뤄놓은 게 없다는 자괴감, 그 자괴감이 부추기는 (무언가를 빨리 해내야 한다는) 불안감, 이 나이에 인간관계는 왜 또 그렇게 다시 어려워지는건지..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서 나는 '쉼'을 선택했다. 파트타임으로 하고 있는 일을 제외하고는 다 손을 놓았다. 공들여 해 오던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나는 (전처럼) 다음 모임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내가 멈춘 것들 속에는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글을 하루라도 안 쓰면 입안에 가시라도 돋는 것처럼 글쓰기의 효용과 위로에 대해 알리고 싶어했던 자칭 '글쓰기 전도사'에서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그런데 실은, 외적인 것들 (나의 나이나 아이들이 떠나가는 상황 같은 것)은 어쩌면 그야말로 외적인 이유일 뿐일 수도 있다. 요 근래 나는 인간관계에서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순수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오산이었다. 타인을 원망하다 보면, '순수'를 내세우는 나는 얼마나 순수한가 라는 자책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 나이에 '순수'를 말한다는 게 철없게 느껴질 땐 견딜 수가 없기도 했다. 그런 자신을 들볶아대지 않기 위해 쉼을 선택하고 글쓰기도 멈추었지만, 그럼에도 난 여기에 일주일에 번은 글을 썼다. 어떤 의무감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어떻게 읽힐까 하는 부담도 내려놓고 말이다.


피아노도 다시 치기 시작했다. 이곡 저곡 치던 습관을 내려놓고 하나만 정해서 그저 할 수 있는 큼만 연습했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음악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서 치는 피아노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도 쳐보고 저렇게도 쳐 보던 곡이 있다. 어제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글쓰기, 운동등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치는데도 힘을 빼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인데, 어제 피아노 연습을 하다 내가 힘을 많이 빼고 연주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 무한 반복해서 연습하던 곡인데 힘이 빠지니 순간 손가락이 깃털 같이 느껴졌다. '아, 이게 되네?' 혼자 쾌재를 불렀다. 아주 오랜만에 '기쁨'이 밀려왔다.


내가 쉼을 선택하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던 것들. 일주일에 한 번 음악에세이 쓰기,  J에게 음악 배달하기, 그리고 피아노 치기. 이 시기에 내게 남은 것들. 이것들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이 아닐까. 음악과 관련된, 소소하지만 멈추지 않고 샘솟는 기쁨을 선사해주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