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먼저 돌봐야 할

파헬벨, 캐논

by 지앵

S에게.


얼마 전, 딸아이 입시 문제로 갈등이 있었어. 정확히는 남편과 딸의 부딪힘... 한바탕 폭풍이 일고 나서 아주 늦게 잠들어 일어났어. 아침밥을 짓고 남편이 출근하는 걸 보고 나서 뭔가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솟구치기 시작했어. 1년간 재수생활을 한 딸내미도, 물심양면 (특히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한 남편도, 가족들의 감정을 살피며 애쓴 나 자신도 애처롭더라. 눈물이 좀 났지. 가족들 감정 챙기느라 나를 못 돌본 것 같아서


내가 지난여름부터 마음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데 심리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동영상을 정주행 했어. 마음공부를 해 보니 궁극적으로 말하는 건 표현은 다를지라도 다 비슷했어. 결국은 나 자신을 1번에 놓고 생각하라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과는 달라. 나를 먼저 챙겨야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있다는 거지. 모르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달까.


굳은 표정으로 밥을 먹고 축 처진 어깨로 출근하던 남편도, 늦게까지 울다 방에서 자고 있던 딸도 안쓰럽고 짠했지만 그 순간엔 어쩐지 '나부터 생각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식탁을 치우고 스피커를 연결하고 음악을 틀고 노트북을 열었지. 나를 감싸는 그것들은 나를 조용히 위로해 주곤 해. 아니 위로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거야.


라디오를 트니 즐겨 듣는 신윤주의 가정음악에서 파헬벨의 캐논이 나오더라고. 그 음악을 들으니 요동치던 마음이 쫘악 가라앉는 거야. 단순하면서도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음색이라서 그런가 봐. 내 마음까지 이리저리 조율해 주는 느낌이랄까. 음악을 들으며 키보드를 다른 때보다 탁탁거리며 글을 쓰고... 그 행위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솟구치는 감정을 다 받아주고 조용히 그걸 지나가게 도와주는 나만의 리추얼 같은 것이었어.


그 시간 덕분에 그날 하루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낼 수 있었지. 딸을 깨워서 좋아하는 카레를 먹이고 같이 외출을 했어. 나도 옅은 화장을 하고 같이 나가서 올리브영도 가고 카페도 가고. 감정적인 이야기보다 유치하더라도 단순하고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릴 수 있는 말들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고... 단순한 게 최고일 때가 있어. 파헬벨의 캐논처럼 말이야.


PS : 그날, 파헬벨의 캐논을 듣고 내 감정을 그저 덤덤하게 문자 사연으로 보냈는데 우리의 신윤주 아나운서가 내게 커피 한잔을 선물로 주셨어. 커피도 반가웠지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 느낌이 참 좋더라.


https://youtu.be/Ptk_1Dc2iPY?si=puKxcNRXbvpCy5eV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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