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경 Oct 29. 2024

숙제 같은 사랑


사랑에 편협했다. 젊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부모 자식 간 사랑이 최고라 믿었다. 그런데 우리 인간사 사랑이 그리 단순 명쾌하지 않았다. 사랑에 관한 한은 무한정으로 깊고 넓어서 밀린 숙제더미 같다. 그걸 나는 인류애라 부르기로 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부부가 된다. 자식이 태어나면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사랑한다. 그 자식이 또 어른이 되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또 지극정성 사랑을 쏟는다. 그 자식이 또 어른이 되고......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랑이 돌고 돌아 만들어진다. 이렇게만 보면 지구에는 사랑이 철철 넘쳐나야 맞다.  


아들을 24시간 혼자 꼬박 보던 때였다. 유난히 잠을 안 자 항상 안고 업고 있었다. 자는가 싶어 조용히 눕히려고만 하면 울었다. 눕히는 데 성공을 해도 조금만 소리가 나면 또 깨서 울었다. 낮이고 밤이고 이어서 두 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으니 노상 자다 일어난 차림으로 집 아니면 아파트 복도를 서성이는 것이 일이었다.

바로 옆집도 비슷한 또래 아기가 있었다. 아주 순해 보였다. 우는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고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아기 눈을 맞추며 웃고 말하는 모습도 자주 보았고 여대생 딸과 아저씨도 얌전하기 그지없는 아기에게 환한 미소로 옹알이에 대꾸해 주는 것을 많이 보았다. 늦둥인가 보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졸리기도 하고 힘든 차에 옆집 문이 열렸다. 우리도 아기가 안 잔다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조용하게 등짝에 붙어있는 아들은 내려놓으면 울 것이 분명하니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싶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온통 아기 사진에 아기 물품이다. 가족들이 모두 아기 곁에 모여 있었다. 밤늦은 시간인데 아저씨도 계시고 그냥 집에 갈까 하는데 마음을 읽었는지 괜찮다고 먼저 편하게 신경을 써주셨다. 가까이서 보니 아무래도 두 분이 늦둥이를 낳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보였다. 알고 보니 홀트에서 외국으로 아기가 입양되기 전까지 맡아 키우신다고 했다. 의문은 풀렸지만 많이 놀라웠다. 매일 사진을 찍어 사진 일기를 쓰셨고 예방접종이나 아무리 작은 단서라도 모두 기록을 하셨다. 아기가 갈 날이 정해지면 사비로 한복과 이것저것 한국을 생각할 만한 선물을 싸서 보내셨다.
​외국에서 자랄 아기가 단순히 불쌍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한국에 대한 정보를 찾고 싶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보낼 땐 펑펑 울고 한참이나 마음고생을 하고 힘들지만 다시 또  아기를 데려오시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두 눈가가 촉촉했다. 고개를 돌리니 딸도 아저씨도 글썽인다. 적은 돈을 벌겠다고 하는 일로 보기에는 온 가족의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때 아기는 아들과 비슷했으니 지금쯤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은 했을까. 아주머니 기록이 부모님을 찾는 힌트가 되었을까. 양부모님은 잠시 돌봐주었던 아주머니네 가족들보다 더 사랑해 줬을까.

몇 년 사이 네 명의 아기가 그 집을 다녀갔고 그때마다 아주머니네 식구들은 사랑을 가득 주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아기를 보내곤 했다.


사랑은 모양이 참 여러 가지다. 정해진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그 어떤 난관에도 사랑을 믿어야 한다. 미움이 껴들어도 그 미움조차 사랑의 모양으로 바꿀 수 있게. 숙제 같은 사랑이 점점 더 다양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


빨간색 백일홍 꽃말은 인연이다. 좋은 인연만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전부처럼 느껴지는 삶에서 모든 인연은 그만큼의 사랑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인생에도 좋은 인연은 꼭 있다. 그 인연을 끈으로 사랑을 찾아가기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