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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Jul 04. 2024

회복

한숨을 쉬는 버릇이 있다. 현실은 답답하고 해결은 묘원 하던 시절 나의 유일한 표현이었다. 나름 번뇌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한 번에 훅 하고 내뱉으면 잠시나마 조금은 편해졌다. 그 습관이 남아 지금도 자주 크게 숨을 몰아 쉰다. 대화를 하다가, 모임을 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심지어는 자다가도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왜? 답답해?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불만이야? 기분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내가 뭐 잘못했어? 어디 아파?


인상을 쓰고 한숨을 푹푹 몰아쉬던 내가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부드러운 말투도 없고 좀처럼 크게 웃지도 않는 나다. 그러니 항상 짜증 나고 화난 얼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진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인생도 점차 표정을 닮아갔다.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찜질방이 문을 닫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 일상이 달라졌다. 나도 그랬다. 우선 사람들과 거리가 생겼다. 가족과도 가까이 지낼 수 없도록 공식적인 허가를 받았고 직장에서도 혼자 밥을 먹었고 약속도 없었다. 저절로 세상 모든 사람들과 적정 사이를 항상 유지했었다.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찜질방도 갈 수 없었다. 정적인 상황이지만 몸을 정적이지 않게 만들어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가 내게는 찜질방이었는데.


나의 찜질방 준비물은 책과 목욕가방이다. 꼭 의식처럼 느껴지는 주말 찜질방 나들이는 오래된 일상 루틴이었다. 혼자 가야 편했다. 모든 의식을 놓고 하염없이 땀을 흘리고 쉬고를 찜질방에서 종일 반복하면서 책을 읽다가 자다가 했다. 기진맥진할 때쯤이 되면 다음 단계인 목욕탕으로 넘어간다. 간단한 물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다시 목욕탕 안의 사우나로 직행한다. 찜질방은 건식이고 목욕탕 사우나는 습식이다. 두 가지 방법으로 몸에 붙어있는 때를 퉁퉁 불리고 나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때를 밀기 시작했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내 기억으로는 살면서 가장 정성 어린 노력이 아니었나 싶다. 열심히 진심을 다해 내 몸의 때를 밀어낸다. 살짝만 스쳐도 피부가 새빨개지는 체질이지만 상관없다. 끝까지 때수건을 놓지 못한다. 팔이 구부러지는 한 최선을 다한다. 더 이상 때가 나오지 않는 순간까지 기를 쓰고 온몸 구석구석을 밀다보면 속이 시원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마치 구름 위를 걷듯 가뿐하게 목욕탕을 걸어 나오는 내 몸은 얼룩덜룩 시뻘게져 있기 일쑤였다.


너무 오래간만에 가서 그런지 때 미는 기술이 줄었나 보다. 이번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우툴두툴 딱지가 앉아 점점이 검게 박힌 징그러운 모양이 몸 여기저기에 생겼다. 그 상처는 회복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나는 상처에 딱지가 앉아 회복하느라 간지러운 몸을 긁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살살 때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때는 밀면 밀수록 더 많이 나오는데 화도 그렇다. 내면 낼수록 점점 더 화가 난다. 뻔찔 때를 밀러 찜질방을 드나들던 그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다 짜증스러웠고 다 꼴보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사는 게 지겹게만 느껴졌었다. 그때 어쩌면 나는 화를 밀어내기 위해 때를 그리도 열심히 밀어냈던 건 아니었을까.


코로나로 혼자 있게 되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일상을 정리해 주었고 나의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가고 싶어 안달났던 찜질방은 이젠 안 간다. 지금은 대신 그림과 글과 책과 운동에 정성을 다한다. 즐거움을 주는 취미생활은 밀어도 밀어도 우수수 떨어지던 때만큼이나 많던 나의 화를 밀어냈고 한숨도 잦아들었다. 나는 요즘 확실히 내 인생이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더 이상 무식하게 때를 밀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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