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냥이 안 돼
한참 코로나로 마스크가 필수였다. 비말 차단을 위해 쓰던 마스크는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자 점차 디자인이 진화했다. 숨쉬기 편한 새부리형은 주로 어른들이, 빨간색, 분홍색, 검은색 같은 다양한 색상은 청소년들이, 캐릭터 그림은 어린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면을 이용해 빨아 쓸 수 있는 경제적인 마스크도 등장했고 명품 마스크까지 나왔다. 비즈나 캐릭터를 달아놓은 스트랩은 한층 멋 내기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사실 마스크가 얼굴을 다 가리는 역할을 하다 보니 아무리 개성이 드러나도 처음 보는 사람은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알 도리가 없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이후 얼굴이 드러나는 게 신경이 쓰였고 마스크도 약국에서 일반형으로 가장 흔한 것만 사서 쓰고 다녔다.
코로나 집합 금지 명령으로 공방 문을 닫게 되었을 때다. 공방 근처 커튼 집 아주머니가 무지 면 마스크를 만들어 팔아볼까 하신다며 나와 동생에게 써보라고 선물로 주셨다. 사용해 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셨다. 심심하던 차에 나는 그 마스크에다 작은 꽃그림을 가득 그려 넣었다. 천 자체에 꽃그림이 있는 면 마스크는 많이 봤는데 직접 그림을 그린 마스크는 못 본 것 같아 괜찮으면 우리도 팔아보자며 농담을 했다. 얼마에 팔까, 얼마를 커튼 집과 나눌까 깔깔대며 떠들었고 다 그린 마스크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동생은 아주 예쁘다면서 자기도 그려달라 했고 나와 동생은 그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스크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날 하필 몸이 안 좋았다. 평소 호흡기가 안 좋아 다니던 대학병원이 있었지만 갈 시간이 없었다. 동생네 집 근처 병원이 잘 본다고 해서 퇴근 후 주차를 동생네 아파트에 하고 나선 길이었다. 몸을 축 늘어뜨린 상태로 힘들게 걸으며 아파트를 벗어날 때쯤이었다. 저 앞에 보이는 횡단보도에 두 사람 모습이 영 심상치 않다. 이만치 떨어져 한참을 집중해 보니 한 사람은 젊었고 또 한 사람은 연세가 지긋했는데 젊은 사람 멱살을 연세 드신 분이 잡고 있었다. 젊은 사람은 이거 놓으라며 욕을 했고 연세 드신 분은 가만히 있으라며 그냥은 못 간다고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하필 신호등 앞에서 싸우는 거야. 나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갈까 망설이면서도 선뜻 발이 안 떨어졌다. 연세 드신 분이 돌아가신 아버지 연배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저런 꼴을 당한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연세 드신 분이 큰 소리로 나를 콕 집어 거기 꽃 마스크 쓰신 분이라고 부르며 신고를 해달란다. 아, 끼고 싶지 않다. 신고가 꺼려져 나는 먼저 말려볼까 싶어 앞으로 몇 발짝 걸음을 떼는데 젊은 사람 주먹이 올라가며 어르신 머리를 때리는 게 아닌가. 이런 망할 놈을 봤나. 어르신 머리에서 피가 난다. 이젠 어쩔 수 없다. 핸드폰으로 112 신고를 하고 이어 다시 119에 전화를 걸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젊은 놈 손에 라이터가 들려 있는 게 보였다. 손에 뭘 들고 때리면 무기가 되기 때문에 단순 폭행이 아니다. 내 아들과 비슷해 보이는 젊은이는 안타까웠고 어르신은 아버지 같아 마음이 아팠다. 119와 경찰이 동시에 도착해 어르신은 119를 타고 젊은이는 경찰차를 타고 갔다. 이후 나는 경찰이 묻는 말에 여러 번 같은 대답을 했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경찰 전화를 받고 수십 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이때까지는 좀 귀찮은 정도였다. 그런데 경찰서 강력반까지 찾아가 진술서를 쓰면서는 마음이 무거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형사는 젊은 사람이 라이터를 쥐고 때렸기 때문에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때 나의 진술서가 쓰이게 된다는 설명을 했다. 도움이 되는지 묻자 판사가 글을 보고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무거운 돌을 얹은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혀 왔다. 나는 젊은이가 잘못을 깨닫는 정도의 선에서 선처를 부탁한다는 글을 최선을 다해 썼다. 분명 젊은 사람이 잘못했지만 쓰레기를 버리고 욕을 했다고 멱살을 잡은 어르신도 잘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면 논술 시험이라도 치르는 줄 알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글짓기를 하고 나니 작은 보답을 하기 위해 차비 정도를 드린다며 형사는 계좌 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돈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착잡한 마음으로 늦은 저녁 경찰서 강력계 문을 밀고 나섰다. 진술서를 쓰는 내내 강력반에서는 책상을 두드리며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드라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신고하지 말 걸... 착잡하고 찜찜하고 답답했다.
며칠이나 썼을까. 나는 그날로 그림을 예쁘게 그려서 쓰고 다녔던 마스크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동생 것도 함께. 마스크가 너무 눈에 띄어 젊은 사람이 마스크를 보면 기억할 것 같았다. 해코지라도 할까 무서워 나는 한동안 근처를 걸어 다니는 것도 겁이 났다. 억하심정을 품고 걸리기만 해 봐라, 네가 그렇게 정의롭냐, 젊은 사람이 꽃무늬 마스크 아줌마만 찾아다닐 것 같았다. 정의로운 사람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눈에 띄는 것도, 정의를 실천하는 것도 깜냥이 안 되는 내가 감당하느라 정말 오랫동안 나는 힘들었다.
어둠이 잘 보인다는 건 내가 그 어둠 속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밝은 세상을 향해 그 어둠을 어떻게 지나왔는가가, 어둠을 뚫고 나왔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눈을 감고 밝은 빛을 보지 못하면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밝은 곳에서나 어두운 곳에서나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