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코치가 없어서

공짜 레슨

by 이윤경

세상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말도 안 돼! 기가 막혀. 미친 거 아냐? 내가 놀라 입을 벌린 채 쳐다보자 그녀는 더 큰 한 방을 날렸다.


“ 언니 때문에 나갔어. 그 아줌마 언니 엄청나게 질투했는데 언닌 전혀 모르더라.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겨서 완전 맹추야! ”


회원은 수영장을 발칵 뒤집어 놓고 경쟁 수영장으로 갔단다.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날씬하고 예쁜 아줌마가 아니었다. 가슴은 축 쳐지고 온몸의 살들이 흘러내리는 흔한 아줌마였는데 그런 아줌마랑? 더군다나 50대였는데? 그렇다면 그 회원과 그렇고 그랬다는 수영 강사 나이 차이가 도대체 얼마야? 무엇보다 회원은 항상 어린 딸을 데리고 다녔다. 사랑에 나이차가 놀라운 건 내 편견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해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속물처럼 느껴졌지만 역시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면 내 기분이 좀 그런데… 다 차치하고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진… 짜… 사랑이었어?


나는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을 배운 지금도 물이 무섭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수영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공짜에 눈이 멀어서였다. 자신을 이겨보자 라거나 두려움을 극복하자 같은 다짐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월급을 주면서 수영 개인 지도를 무료로 해주겠다니 도대체 돈이 얼마냐고. 오로지 공짜에 현혹되어 OK를 외친 나에게 아버지는 그래서 네가 이마가 넓은 거라며 깔깔 웃으셨다.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수영장 사장님은 그렇게 공짜를 미끼로 나를 꾀어 수영장 매표소 아르바이트 자리에 앉혀놓았다.


꽤 큰 수영장이라 회원이 많았다. 여직원이 따로 있어 나는 표만 받으면 됐다. 식당도 있고 샤워도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수영까지 배운다니 그야말로 복지가 최고인 아르바이트였다. 거기다 여직원은 알고 보니 동생과 친구였다. 대화도 잘 통했지만, 언니가 없던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그녀가 새벽반에 맞춰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내가 늦게 출근해 저녁반까지 있고 내가 새벽반에 맞춰 일찍 가는 날은 그녀가 늦게 출근해 마감하기로 했지만, 그녀는 매일 나와 함께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그녀보다 근무 시간이 짧았고 돈에 관련된 마감은 그녀가 다 했으니 실상 할 일이라고는 매표소에서 그날그날 입장 확인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만한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모든 게 완벽했고 모든 게 행복했다. 수영장에는 새로 오는 손님들보다 오래된 회원들이 더 많아 바로 익숙해졌고, 직원들도 모두 좋았다. 더구나 나에게는 동생 친구인 여직원 빽이 있었으니 처음부터 편했다. 언제쯤부터 공짜 수영을 배울까, 무료 강습이라고 사장님은 이야기해 놓았을까, 누구한테 배우는 게 좋을까 그것만 궁금했다. 아르바이트 주제에 직원 복지를 똑같이 따라 했다가 말 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됐다. 부탁이 어려운 성격 때문에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애타는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은 한 달 가까이 내가 없을 때만 들르셨다. 공짜에 눈이 멀어 내내 공짜만 머리에 맴돌던 찰나 자처해서 먼저 수영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강사가 생겼다. 나와 동갑이고 남자 강사라 잠시 고민은 했지만, 어차피 남자밖에 없었고 누구여도 수영복을 입고 만나는 건 부담이었다. 기다리던 공짜 강습이니 당연히 해야지. 척척 잘 맞아떨어지는 테트리스처럼 삐걱거림이 없었다.


강사는 시간과 요일을 정해주었다. 중년 여자 회원과 그녀 딸이 함께 레슨을 받는 시간에 들어오라고 했다. 엄마 같은 분과 어린아이와 수영을 같이 하게 되어 내심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20대 남자 강사에게 동갑 아르바이트생이 수영을 배우면 이상하게 볼까 걱정이었는데 일부러 그 타임에 부르는 것 같아 고마웠다. 물속에 머리를 넣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어린아이는 수영을 전혀 못 하는 내가 재밌었는지 강사보다 더 열심히 손도 잡아주면서 가르쳐 주었다. 중년 여성과 그 딸은 수영을 무척 잘했고, 우리 엄마 같은 풍성한 가슴과 몇 겹의 배둘레햄을 가진 몸으로 어린 딸과 함께 나를 도와주던 중년 여성 회원 때문에 동갑 남자 강사에게 수영을 배우는 불편함이 싹 사라졌다. 덕분에 수영 선생님 세 명을 두고 나는 빠르게 수영을 배웠다.


중년 여성과 어린 딸과 나는 사이가 무척 좋았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성 회원은 무릎까지 물에 담그고 수영장 가에 걸터앉아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아이와 강사는 물장난을 치면서도 내 연습을 도와주던 영화 같은 장면 말이다. 이에 더해 완벽한 영화 엔딩을 만들어 준 건 강사였다.


속셈이었던 공짜 수영을 물에 빠져 죽지 않을 만큼 배웠을 때 수영 강사로부터 나는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할 사람이 있다 냉정하게 한마디 대답만 하고 수영장을 그만두었다. 그게 끝이었다. 잘 생기고, 몸 좋고, 쾌활한 남자에게 고백받은 기억은 그렇게 소나기 영화 같은 추억으로 오랫동안 가슴 설레는 혼자만의 비밀로 남았다.


그런데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나를 이용한 거야? 그럼 고백은 뭐야? 여자를 떼어 놓으려 일부러 나를 불렀나? 고백은 진심이었겠지... 고백받았던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내가 궁금해하며 사랑인지 묻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 언니가 너무 순진해서 말하기 좀 그런데 그 아줌마, 외롭고 돈 많은 여자였어. 강사들 애인 한 명씩 다 있었어. 언니만 몰랐지. 수영장 사람들 다 알고 있었어. 언니 진짜 눈치코치가 없더라고! 몰라도 너무 몰라. 영 세상을 몰라. ”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관계 같은 건가. 그럼 그 중년과의 불륜 사이에 내가 주인공이었던 거야? 얼마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까 잠시 상념에 잠겼는데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이다. 까딱 잘못했으면 공짜 수영 못 할 뻔했잖아! 둘 사이를 알았더라면 절대 거기 껴서 수영을 배우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눈치코치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갑자기 웃음이 났다. 깔깔 웃는 내게 그녀는 그렇게 재밌냐며 언니는 세상을 너무 몰라서 큰 일이라고 했다.


글록시니아 꽃말은 욕망이다. 살면서 욕망이라고 할 만한 것을 느껴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그저 매일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그것도 욕망에 들어간다면 나의 가장 큰 욕망은 지금이 오래오래 유지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지금 같은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괴테가 <자기 욕망에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목표를 분명히 가진 것이 된다>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너무너무 이해한다. 나는 나의 한계를 정확하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