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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Jun 12. 2022

개새끼, 거리두기

출근 전 연약한 너와 나의 거룩한 의식

[개새끼, 거리두기]


 40년을 살아도 쌍욕을 들으면 멘탈을 온전히 유지하기 쉽지 않다. 상담 중에 마음이 틀어져 버린 한 친구에게 문자로 쌍욕 테러를 당했다. 물론 성격장애가 의심되는 친구라 병식을 인지하고 크게 상처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 아직 그런 일로 퇴사하지 않았으니 잘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대학병원 정신과에 근무할 때도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술 취한 환자들의 수십 종류의 욕을 10분 이상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 개새끼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달 정도 지나니 꽤 무덤덤해졌다. 자살시도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일이 내 밥벌이기도 했으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찾아온 두통으로 종일 누워 있다가 약기운에 힘입어 대공원 숲으로 나갔다. 잠시 남편에게 전화를 하느라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아파트 길 건너 남자아이들 무리가 랩을 가장한 욕을 흥얼거린 것 같았다. 이상하게 계속 기분이 더러웠다. 띄엄띄엄 들려오던 욕을 조합해 보니 불특정 다수에게 쏟아붓는 그들의 저급한 놀이였다. 나는 그 불특정 다수의 특정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OOO에 사는 미친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 이 기겁할 놈들. (시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표현-)

욕에 담긴 저주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즉 말에 온갖 분노와 혐오를 담고 내뱉으면 분명하게 칼이 되고 총알이 되어 그 사람의 영혼에 쿡 박힌다는 말이다.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다 큰 어른인 나도 이렇게 휘청거리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또 가슴이 미어진다. 며칠 전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욕에 노출된 친구를 상담 중에 만났다. 그 친구는 나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담 중에 우는 일이 없지만, 그날은 나도 눈물을 꾹 참다가 툭, 흘렸다.

 “이것만은 분명해. 네 잘못이 아니야. 선생님이 대신 사과할게. 어른들이 잘못한 거야. 그리고 너는 이미 충분히 멋있고, 훌륭해. 정말.”

 진심을 다해 꾹꾹 눌러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후, 후, 커져라, 커져라 너의 자존감이여.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에게 생기를 주고 개새끼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다. 병이 있든 없든 그럴만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 어떤 사람에게 듣는 욕과 감정에서 거리를 두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나도 욕을 하면 좀 나아질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처럼, 개새끼 한번 내뱉으면 치유가 될까. 해봤다. 해봐라. 해봐도 여전히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게 사람의 섬세한 영적 영역이다. 일과 나를 분리하기, 부정의 감정과 거리두기, 개새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긴긴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연약한 너와 나를 위한 끄적임. 출근 10시간 전 거룩한 의식이다.  

<긴긴밤> 중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104p)

_루리,『긴긴밤』,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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