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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화요문장

여름 과실 한가득 베어 물고

이작가의 화요문장

by 꽃고래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36)

2022.07.05.(화)

“어렴풋이 살아갈 방향 같은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록을 단축하는 것도, 완주를 해내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못할 것 같은 일,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일,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했던 일을 천천히 나의 속도로 해내는 것. 설령 완주하지 못해도 괜찮다. 기념품은 대회에 참가만 해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즐거운 마음으로 뛰듯이 걷는다. 걷다가 힘이 생기면 그때 뛰면 된다. (97)”

_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김보통, 한겨레출판

여름을 알리는 것엔 더위만 있지 않다. 제철 여름 과실들이 비교적 저렴한 값에 알록달록 선명하게 주부들을 부른다. 자두, 피자두, 살구, 플럼코트, 천도복숭아, 바이오체리. 농협 로컬존에서 생산자들이 시험 삼아 키운 것들을 시험 삼아 구매해본다.

식탁에서 오붓하게 여름 과실과 저녁밥을 먹으며 아들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쇼미더머니 노래도 듣고 무더위를 이긴다. 요즘 내게 아들들은 큰 기쁨이다. 뭐든 조금 천천히 가는 것을 즐겨했던 아들은 이제 키도 크고 마음도 자라서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적응했다. 엄마에 대한 헤아림과 이해로 빨래도 열심히 실어 나른다. 사춘기라 감정 기복이 커도 건강하게 스스로를 돌본다. 이제 주말에 여친 만나러 가는 아들과 시간 보내려면 미리 예약도 해야 할 정도로 나와는 물리적으로 멀어졌지만, 마음은 가까워졌다.

텃밭농사는 그만뒀지만 자식농사는 네버스탑. 잡초 뽑고 물 주고 벌레 잡고 인내해야 얻을 수 있던 열매들. 인내의 끝이 달고 크고 고맙다. 아이들의 속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안다. 때에 따라 통통한 과실을 맺으니 조급해하지 말자,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