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의 화요문장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 [51]
2022.10.18.(화)
[내향적인 아이, 선택적함구증]
“상담 이후, 나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 항상 자리 잡고 있던 알 수 없는 슬픔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슬픔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마음껏 슬퍼한다.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슬픔을 느끼며 눈물이 흐르는 일은 적어졌다.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로도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어린 여진이의 등줄기를 쓰다듬을 때마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은 그렇게 점점 더 사그라들어갔다.”(219)
내가 담당하는 아이 중에 ‘선택적함구증’의 A가 있다. 낯선 단어만큼 아이와 대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라포가 형성 되고나서 알았다. A는 끝말잇기를 할 정도로 사실 말을 잘하는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A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미처 표현하기도 전에 차단되었던 경험이 많았고, 학대에 노출이 되었다. 사례 종결 후에 아동학대 재신고로 다시 A와 만나게 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선택적함구증을 가졌던 쌍둥이 자매의 기록이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를 생각하며,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써내려가는 문장들이 우리를 닮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라면서.”(19)
낯을 많이 가리고, 쉽게 긴장하고 불안한 기질. 아마 A도 그랬을 것이고, 이 책의 주인공 쌍둥이 자매도 그랬을 것이고, 아마 나의 둘째도 그랬을 것이다. 2학년 때 학교 가기 싫다는 둘째를 보며 고집인 줄 알고 혼을 냈던 기억은 5년이 지나도 내게 후회와 아픔으로 다가온다. 누구보다 말을 잘하고 위트있고 생각이 깊은 아이는 학교만 가면 조용한 아이로 변했고 5학년이 되어 좋은 교사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하게 된다. 아이는 그 내용을 간증문으로 남겼고 나는 울었다. 올해 6학년이 된 아들들의 학교 담임과 얼마 전 상담을 했다. 둘째는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친구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고 했다. 첫째 또한 아이들과 재미있게 잘 지내며 인기가 많아 반장이 되었다. 내향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하고 섬세하지만 여린 아들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적응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어찌 감동을 아니 받을 수 있겠는가. 나에게 아들들은 감동 그 자체다.
“본래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이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진 섬세함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을 모색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사려 깊고 배려심이 좋은 편입니다. 비록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들은 본래의 성향을 강점으로 배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갖춘 자들이기에, 지독한 마법에서 풀리게 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진행이 됩니다. 가면 속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사회 에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이 된 셈이죠.”(282)
생각해보면 나 또한 매우 내향적이고 느리면서 반항적이고 고집이 센 아이였다. 그 부끄럼 많고 고집 센 아이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달마다 평균 20명씩 만나고 상담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심리학 공부를 미루었는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연민과 사랑의 마음과 육아의 경험과 몇 년의 상담 경력으로는 부족하다. 다행인 것은 깊은 필요를 느낀 시점보다 조금 하고자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나는 오래 걸린다. 마흔이 넘었지만 또 시작하려고 한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 살기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