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와 아버지, 그리고 無汗不成

러닝 묵상

by 꽃고래

10km와 아버지, 그리고 無汗不成



처음으로 10km를 완주했다. 달리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퇴직 후에 무작정 달리셨다. 풀코스 마라톤도 몇 번 하신 것 같다. 집에 메달이 가득했고, 러닝 대회 티셔츠를 잠옷처럼 입으셨다. 올림픽공원에서도 대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응원을 따라나선 적은 없었다. 거의 20년 전이니 나는 졸업 후에 연애하고 직장 생활로 아버지가 왜 달리는지, 얼마나 달리는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직 젊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말해주고 계셨던 것 같은데 난 그저 선택적 귀머거리였다.


54년생 아버지의 한쪽 손은 구부려지지 않는다. 공장 기계에 손이 끼였던 큰 사고였다. 그때도 나는 잘 몰랐다. 아버지가 왜 다쳤는지, 제약회사 공장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노조 위원장까지 지냈던 아버지는 큰 딸 결혼을 마지막으로 30년 넘게 돌리던 축의금을 회수하고 퇴직을 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

밴프 로키투어를 마치고 아버지는 여행 후기를 남기셨다. 그 후기를 읽은 우리 가족들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친 손이 아닌 온전한 다른 팔로도 손주들 팔씨름을 거뜬히 이기신 아버지가 늙음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가셨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 홀가분함.

밴쿠버에서 시작되는 새로움의 설렘과 기대감에 부푼 마음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고 처음 맞이하는 해외여행!

몇 년 새에 내 몸이 많이 늙었구나, 새삼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생각과 행동이 좁아진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참으로 슬퍼진다.

마음을 비우면 또 채워지는 무엇인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찿아보자, 새로움을~

누군가 무한불성 無汗不成 "땀을 흘리지 앓으면 그 대가를 바라볼 수 없다" 라 했다.

땀 흘리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봉우리

광대한 멋진 풍경들을 눈과 마음으로 담아본다.

마음의 넓고 커지는 느낌은 무엇이던가

같이하는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도 좋았다.

재치있고 재미있게 진행하는 가이드에게서 즐거움을 찾는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여행을 마친 뿌듯함,

슬픔 속에서 나를 위로한다.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새로움의 기획을 짜야겠다.

감사의 편지를 나에게…"


모레인 레이크에서 아부지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내가 아버지 옆에서 같이 뛸 수 있을까. 그간 잘 살아오셨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할 수 있었을까. 무한불성 평생 흘린 아버지 땀으로 나와 아이들이 풍요로워졌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달리기.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 에선 러닝 머신이 고문 기구였고, 현대인들은 절제된 고통을 즐기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를 고통 속에 몰고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쓴 어버이들의 마음, 수고하는 타인과 세상을 향한 마음을 기리기 위함이 아닐까. 절제된 고통의 즐거움 속 10K 완주를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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