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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Feb 03. 2021

정오입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

두 번째 산문집 <수고로움>에 수록된 글입니다. 나머지 "수고"와 관련된 글들은 모두 발행취소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확인 부탁드립니다!! <수고로움>에 관련된 정보는 프로필에 있습니다. 도움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전 도서관 봉사가 끝나면 12시다.

“정오 12시입니다.” 

내비게이션도 알려주는 정오다. 사람들에게는 정오라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가 보다. 특별히 일부러 알려줄 만큼. 정오를 알려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정오에는 사람들 대부분 무엇을 할까? 정오에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정오가 되어 산책을 나가는 사람도 있고, 정오에도 변함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정오에 밥을 먹는다. 정오는 밥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11시부터 마음속으로 정한 메뉴의 냄새가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짜장면, 떡볶이, 갈비탕, 초밥, 햄버거, 파스타, 김치찌개 등등. 나는 주로 전날부터 메뉴를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까. 이 고민은 코로나로 집에서 종일 삼시세끼 차리기 시작하면서 깊어졌다. 무엇을 먹일까. 그러다 정말 모든 게 귀찮아질 때면 밥때 5분 전에 메뉴를 결정한다.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컵라면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점심에 컵라면이라도 먹이면 저녁에는 된장국이라도 끓이게 되는 주부의 요란함을 누가 이해할  있겠는가. 뜨거운 물로 녹인 폴리에스테르의 환경호르몬이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천연항생제 된장으로 몸을 소독해보자, 라는 심리다. 참으로 유별나다. 아는 것이 죄다. 요즘 엄마들은  많이 안다. 모르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불편한 마음으로 가지고 음식을 준비하는  이중의 고통! 아침에 , 점심에 피자라도 먹으면 저녁에 쌀밥을 먹이려고 쌀을 씻는다. 남편은 삼시세끼 밀가루  먹으면 어떠냐고 했었다. 그렇게 밀가루 예찬론자이던 그도 이제는 변했다. 수입산 하얀 밀가루의 백해무익함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고혈압을 얻게  그는 이제 현미 채식만 한다.

진작에 아내의 말을 들을 것이지.’

 여하튼 비도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엄마 따라 도서관으로 가야 하지만 네 명의 초딩들은 집에서 뒹굴거리겠다고 했다. 그냥 뒹굴거리는 꼴을 못 보는 나는 숙제와 책 읽기 후 티브이 시청을 오더 한다. 엄마가 없으면 유독 책임감이 강해지는 아들들은 오더대로 척척 해나간다. 도서관 봉사가 끝나는 시간이 되었다. 허기진 시간이다. 나도 배고픈데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은 얼마나 배고플까 하며 빛의 속도로 마트로 달려가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았다. 정오가 된 지 12분이 지났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실제 나의 핸드폰 벨소리는 클래식한 옛날 전화기 소리.)

“여보세요?”

“엄마, 배고파.”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평소 같으면

그래 엄마가  갈게.  엄마가 먹을   가지고 가서 맛있게  줄게. 조금만 기다려.’

등등의 말을 할 텐데 이날만큼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숨을 크게 쉬고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다. 나는 삐진 것이다. 아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씩씩 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내복 차림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이들과 여기저기 너부러진 빨랫감들, 과자 부스러기, 속이 훤히 보이는 펼쳐친 책들이 거슬렸다. 나는 잔뜩 삐친 볼멘소리를 하고야 만다.


“다 똑같아!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밥을 줄까. 내가 언제 너희 굶긴 적 있었니? 왜 전화를 하면 엄마의 안부를 묻지도 않고, 인사도 안 하고 어떻게 배고프다고 너희 요구만 말할 수 있어? 엄마가 무슨 밥 차리는 기계야?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청소도 안 하고 정리도 안 하고 엄마 도와주지도 않고 너희 정말 실망이야. 당장 들어가!”

민망하게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

ⓒ이주부








그러나 우리 모두는 배가 고팠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재빨리 채소와 고기를 볶고 밥을 데웠다. 여하튼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 차린 뜨끈한 밥상에 모두 모여들었다. 눈치를 보며 먹는다. 맛있게 잘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는 꼭 빼놓지 않는다. 먹고 배부르고 다시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아이들과 나의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잠시 자존심이 상했고, 꼰대처럼 잔소리를 해댔지만 밥으로 서로 화해한다. 엄마=집밥. 하지만 나는 내가 엄마인 게 어색할 때가 있다. 심지어 사 남매의 엄마인데도 말이다. 엄마=OO. 다른 이미지는 없을까 고민해본다. 엄마는 무엇일까. 엄마=정오. 엄마=저녁. 엄마=아침. 말고 뭐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뭘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사람? 일지도. 그런데 이상하지.
오늘따라 나도 엄마 밥이 먹고 싶다!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이주부

<짜장 떡볶이>

1. 파 기름을 내어 춘장을 살짝 볶는다.

2. 간장을 조금 섞어 타지 않게 볶는다.

3. 물을 한 컵 붓고 끓이며 조청을 적당히 섞어 단맛을 낸다.

4. 썰어놓은 현미 떡볶이 떡과 어묵을 넣고 푹 끓인다.

5. 양이 부족할까 봐 만두를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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