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채 흔들리며 걷던 날
생이 유한한 건 알지만, 하루에 갇히다보면 삶이 아득하다. 오랜만에, 실로 너무나 오랜만에 복귀한 일터에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하루 운영 일지를 쓴다. 그래야 간신히 하루를 보낸 것만 같다. 마흔을 홀짝 넘기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빨리 간파하여 너른 자리로 나아가고 싶지만 어림없는 소리.
“Drawing is the root of everything.”_Vincent van Gogh
나의 사랑하는 반 고흐가 말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살아있을 생전에 인정과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토록 열심히 살고 끝내 미쳐버린 그가 그렇게 가여우면서도 좋다.
소묘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듯, 점묘로 그림 하나를 완성하듯 하루의 점을 찍어야 나라는 사람이 되고, 아이들이 생명으로 차오른다. drawing이 모든 것의 root라면 내 삶의 root는 ‘성실함’ 정도 될까. 가진 재주도 없고, 집도 절도 없으니 오로지 성실 하나 내세워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일까. 죽을힘을 다해 산다는 말. 이 말 이상으로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 어택으로 아직 깨지 못한 몽롱한 몸과 마음으로 출근길에 섰다. 집에는 열이 펄펄 끓어 축 늘어진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을 돌보며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있다. 남편은 미안하지만 저녁에 먹거리를 좀 사오라 한다. 아내의 생일에 아내에게 장보기를 시켜 꺼림칙한가보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오늘은 모처럼 소고기를 사먹기로 했다.
마흔 둘 생일에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아픈 가족을 돌본다. 흔들리지 않아야 할 불혹에 뿌리 채로 생이 흔들리는 것 같아 긴급 처방전을 찾는다. 평소 좋아하는 문학평론가이지 목사인 김기석 작가의 말을 찾아내 듣고야 만다. 누가 나를 좀 다독여줬으면, 하는 나약한 마음이다.
“절망하지 않고 아주 작게 쪼개서 그 일을 해나가면서 인내할 줄 아는 거. 이것이 아름다운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채워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그렇게 충실함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오늘의 점철이라고 말하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내용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집에 오니 따뜻한 미역국이 있다. 아이들의 오밀조밀 손편지와 선물이 있다. 카톡에는 “우리 공주님”이라고 친정 아버지가 축하 문자를 보낸다. 40년 만에 처음 듣는 공주. 나도 공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던가. 웃음이 난다. 연필가루 툭툭 떨어지는 소묘에 곱게 색이 칠해진다. 앞으로 어떻게 잘 살겠다라는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지루한 우주의 눈으로 창백한 푸른 점을 본다. 그리고 그 작은 점에 살고 있는 우리를 축복한다. “삶이 재밌지 않니.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