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07 - 터키 안탈리아
겨울을 나기 위해 안탈리아에 장기 체류 중인 1월. 안탈리아에서는 지금이 우기란다. 진짜로 비가 자주 와서 한동안 집을 나가지 못했다. 집에서 여행 기록도 정리하고 향후 여행에 대한 계획도 정리하면서 쉬고 있지만 너무 오랜 비로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해진다.
맑은 하루를 잡아서 집 뒤 농가 쪽으로 산책길을 나섰다. 집에서 계곡 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오렌진 나무가 무성하게 있는 농촌지역이 나온다. 1월 초인데도 주렁주렁 달려 있는 오렌지 나무들이 신기하다. 어떤 농장에는 수확해 놓은 오렌지가 상자에 담겨있는 채로 썩어가기도 한다. 이 오렌지들은 언제 수확하고 시장에 나가는 것일까? 정말로 궁금해진다.
오렌지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산책을 나서본다. 정말로 가끔 차들이 다니기는 하지만 한가로운 길이다.
적당한 지점에 도착해서 시냇가로 내려가 본다. 마침 작은 의자도 있고 모닥불 피웠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아마 지역주민들이 산책 나와서 가볍게 모닥불을 피워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을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빵과 오렌지로 점심을 한다. 지금이 1월 초인데도 날씨가 따뜻하다. 오랜 시간 집안에만 있었던 답답함이 사라진다.
점심 후에 더 올라가기에는 아내가 힘들어한다. 벌써 4km 이상을 걸어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잡아보기로 한다. 오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재미가 없을 듯해서 시냇물을 건너서 가보자고 제안해 본다. 올라올 때 보니 반대편으로 분명 길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 제안 때문에 아내의 눈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계속된 비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혹시 징검다리가 있나 해서 찾아본다. 다행히 있다.
아내가 건너기에 조금 힘든 곳에 큰 돌을 추가로 놓았다. 그리고 내가 건너가 본다. 충분히 넘어올 수 있다. 그런데 겁이 많은 아내가 다리를 떼지 못한다.
“그럼 내가 업고 건너갈게.”
그러나 아내는 업혀서 건너가지 않겠단다. 그럼 어떻게 하지. 하는 수 없지. 징검다리를 더 보완해야 할 것 같다. 열심히 징검다리를 보완하기 위해 적당한 바위를 찾아본다.
“아니야. 얕은 곳을 찾아볼게.”
“응.”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다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안 보인다. 어디에 간 거지. 큰 소리로 불러본다.
“숙경 씨----”
오래간만에 아내 이름을 크게 불러본다. 그런데 대답이 없다. 조용한 계곡이라 멀리에서도 잘 들릴 텐데 말이다. 또 한 번 불러본다.
“숙경 씨----”
그래도 대답이 없다. 길가로 올라가 또 크게 불러 본다.
“숙경 씨----”
위쪽으로도 불러보고 혹시나 해서 아래쪽으로도 불러본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갑자기 불안해진다.
"어디로 간 거야?"
위로 올라간 건가 아니면 아래로 내려간 건가 혹시 내가 시내를 건너가자고 재촉해서 화가 나서 돌아갔나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핸드폰 연락도 안되는데 말이다.
혹시 내려갔으면 빨리 내려가서 찾아야 한다. 만약에 위로 올라갔으면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단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보지만 어디에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더 내려가면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지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왔다.
아마 4km 이상을 뛰어다닌 듯싶다. 그런데 아까 우리가 헤어진 지점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내가 보인다.
다행히다.
아내가 나를 보더니 화를 내지 않는다. 평상시 같으면 나에게 화를 냈을 텐데 말이다. 그 대신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화가 났던 내 마음도 사라진다.
"아이고! 이 마누라 어디에 갔다 온 거야?"
아내는 내가 시내를 건너자고 하니 자신도 건너가고 싶었단다. 그런데 혼자 건너가고 싶어서 시냇물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오니 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내는 헤어진 지점에 내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안해서 계속 숫자를 세면서 있었다고 한다.
이 겁 많은 아내가 남편 없이 이 터키 안탈리아의 작은 마을 산속 계곡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도 다시 만났으니 다행히다.
내가 4km 이상 자기를 찾아다녔다는 소리를 듣고는 개울 물을 건너 보겠단다. 사실 아내의 이런 태도에 약간 배신감 같은 느낌도 든다.
"아니! 아까 그랬으면 이런 고생안했을 거잖아?"
아내는 얕은 곳을 골라 신발을 벗고 건너갔다. 그런데 물 깊이가 발목을 겨우 잠길 정도이고 온도도 생각보다 차지 않고 시원하다. 겁이 유독히 많은 아내가 이런 용기를 내어준 것이 고맙기도 하다.
집 주변으로 간단한 산책을 나선 길에서 생이별할 뻔했던 위기의 순간을 넘기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그게 부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