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11 - 터키 시데
터키 안탈리아 지역의 주요 방문 목적지 중 하나인 Side는 고대 해안가 도시의 흔적이 지역주민 삶과 함께 살아 쉼 쉬고 있는 아주 이색적인 곳으로 과거 Pamphylia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Aspendos에서 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아침에 안탈리아를 떠나 아스펜도스를 보고 넘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데에 오후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오늘 시데를 보고 나서는 이 근처에서 정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캠핑카 아톰을 밤에 정박시킬 수 있는 해안가로 이동시켰다.
지금은 2월 중순이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벌써부터 수영을 즐기는 가족들도 보인다. 날씨가 한국에 비하면 따뜻한 봄날 수준인데 바다에서 수영이라니. 해안가 뒤편의 사구 뒤에는 과거 시대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부터 아직도 건재한 시데의 고대 유적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부터 시데 구시가지 안으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지역의 많은 방문객들이 해안가에 차를 주차시키고 구도심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과거 아고라로 사용되었던 건물터에서 해안가 길로 따라 들어가면 아폴론 신전이 나오고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원형극장터와 과거 도시 지역주민 거주지 터가 나온다.
우리는 먼저 해안가 길을 따라 아폴론 신전터를 향해 나간다. 아고라 터에 나있는 작은 문을 지나면 바로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가 나오고 해안가를 따라 잘 정비된 도로가 이어진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지만 간혹 오고 가는 관광객들과 여유로운 차 한잔 즐길만한 카페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 곳은 대부분의 유적과 현재 지역주민의 삶의 터전이 혼재되어 있어서 다른 곳과 달리 유적공원으로 지정되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다만, 별도의 건물로 되어 있는 원형극장과 박물관만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다.
시데는 주로 2세기 유적지이므로 오전에 다녀왔던 Aspendos와 거의 같은 시대의 도시이다. 시데를 대표하는 유적은 고대 항구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아폴론 신전이다. 몇 개의 기둥만이 복원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매우 세련되고 웅장한 신전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옆에 도시의 수호자였고 해양무역 시대의 지배자였던 아데나 신전이 있다. 겨울에 문을 닫았던 항구의 봄이 오면 축제를 열고 다시 무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이 신전에 시데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바다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폴론 하면 언 듯 그리스가 생각나는데 왜 이곳 터키 남부지역에서 우리는 아폴론 신전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폴론은 아폴로라고도 불리는데 소아시아 리카에에서 유래한 신이라는 설이 있다. 아폴론의 어원은 그리스나 로마어에서 찾을 수 없고 아폴론의 많은 자손들이 소아시아 지방에 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단다. 그러니까 시데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일대가 아폴론의 고향일 수도 있겠다.
고대 시대에 항구에 도착한 사람들은 태양의 신 아폴론 신전에서 신에게 제를 올리고 고대 도시의 아고라로 향했을 것이다. 아폴론 신전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신전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 항구 주변은 매우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먼바다에서 이곳까지 배를 타고 왔던 사람들에게는 신의 보호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아폴론 신전을 끼고 항구로 들어서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많은 식당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상점가들이 있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스만 제국 시절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다른 관광지보다 보석상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여행 와서 누군가에 주려고 보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목욕탕 건물이 집 한가운데에 떡 서 있다. 정말로 고대 유적지와 같이 숨 쉬고 있는 도시이다.
다시 해안가 길로 나오니 아까 지나가다 보았던 노점상이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그분 호객 행위가 수준이 높다. 우리도 그분의 호객에 이끌려 안쪽 의자에 앉아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었다. 차를 4리라(9백 원 정도, 안탈리아에서는 2-3리라 정도면 마실 수 있었다.)에 파는 것으로 보아 이곳도 다른 곳보다 조금씩 비싼 물가가가 적용되는 곳인가 보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서 원형극장 쪽으로 이동해 본다. 외관은 커다란 역암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묵직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늦은 오후가 되어서 벌써 문을 닫았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겨울철에는 조금 일찍 문을 닫는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런데 우리 눈에 다른 원형극장과 조금 다른 특이한 건축구조가 눈에 뜨인다. 맨 꼭대기 상단 부분에 나 있는 원형 모양의 구멍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저런 건축구조는 왜 만들었을까가 궁금해진다. 아마 저 경사 각도를 이용해서 튼튼한 건축물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제 아톰이 있는 곳으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까 처음에 출발했던 신전과 함께 있던 아고라로 돌아와서 해안가를 따라 아톰에게로 돌아온다. 바람에 밀려와 쌓여 있는 모래 언덕 위에 과거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그 넓이가 지금의 시데 구도심 면적보다 더 넓어 보인다. 이곳에는 거대한 건축물이 없이 아마 일반 주거지였을 것이다. 현재 집을 지었던 돌들이 펼쳐져 있는 구역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다. 시데가 번성하였던 시대에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대도시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한다.
우연하게 들렸던 두 곳과 안탈리아에서 겨울나기 기간 동안에 방문했던 고대 도시들 모두가 해안 도시들의 과거에 얼마나 화려했었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은 터키 땅이지만 과거에 이 지역들은 모두 지중해를 삶의 터전으로 삶아왔던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던 곳이었으리라. 지금의 국가를 기준으로 이 일대의 역사를 바라보면 안 될 것 같다. 터키 남부 해안, 그리스 일대, 지중해 섬, 북부 아프리카 모두가 하나의 문화와 교류가 이루어졌던 곳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이 터키 남부지역은 지금의 주인과 고대 시대의 주인이 전혀 다른 곳이다.
지금의 주인과 과거의 주인이 전혀 다른 곳에서 오늘 하루 쉬어가 보기로 하자. 아톰을 조금 더 아늑한 해안가로 옮겨 본다. 해안가에서는 모닥불을 피워 술안주를 굽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해가 지면서 아름다운 노을이 아내의 사진기에 담긴다. 오늘 지나면 언제 안탈리아 바다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은 터키 내륙인 카파도키아로 넘어가야 한다. 아직도 그곳은 추운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