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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민 Nov 17. 2020

직선을 거부하면 공간이 재미가 난다!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61- 오스트리아 빈 여행(2일, 3일 차)

말이 달리는 도시 공원

빈 여행 2일 차 되는 날, 오늘(2019년 4월 18일)은 아내의 희망대로 오페라 하우스 스탠딩 표를 사서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다. 내 마음은 그리 썩 내키지 않는다. 

오전에는 휴식 및 정박지 공원 산책에 나서본다. 커다란 나무 숲 가운데로 나 있는 2km 정도 긴 공원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 말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공원 한가운데에서 말을 달리는 풍경. 이 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포장이 안되어 있는 길들에서 말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쉴부른 궁전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오후에 우리는 쉴부른 궁전을 찾아갔다. 궁전 내부 관람을 포기하고 정원 산책에 나선다. 나는 여행 기간 중에 유럽의 대표적인 정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유럽 황제들이 만들었던 정원 양식이 변해서 일부는 공원이 되고 일부는 상업적 공간인 테마파크로 변했다. 관광학자로서 테마파크의 기원이 되었던 정원을 직접 보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 대상 중 하나가 쉴 부른 궁전 정원이다. 그러니 왕궁 건물보다는 정원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궁전 건물 앞에 넓은 느낌의 쭉 뻗은 직선도로를 따사 시선은 높은 언덕을 향하고 있다. 그 언덕 위에는 마치 신전 느낌이 드는 흰색 건물이 시선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이 건물은 18세기 프로 에센과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Gloriett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은 황제의 아침이나 소규모 만찬에 사용할 의도가 있었지만 진짜 의도는 가장 영광스러운 곳에 시선을 집중시켜 황제의 권위와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곳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회학자인 푸코는 "공간은 생산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공간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무의식적으로 기능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왕궁 건물과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인 Gloriette는 위치와 시선전략을 통해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리라.

노란색 왕궁 건물과 언덕 위에 마주하고 있는 Gloriette

그리고 왕궁 앞 직선 도로 주변에는 깎아서 만든 것 같은 나무 벽들이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정리되어 있다. 

정형식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벽

바르세이유 궁전과의 차이점은?

이러한 정형식 정원 양식은 프랑스 파리의 바르세이유 궁전 정원이 모델이다. 바르세이유 정원에 비해 쉴부른 왕궁 정원은 굵은 선과 수직을 강조한 느낌이 든다. 바르세이유 왕궁을 넘어서고자 만들어서 같은 양식을 따랐지만 느낌은 다르게 다가온다. 즉, 바르세이유 궁전은 선이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쉴부른 왕궁의 정원은 묵직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느낌의 차이는 바르세이유 궁전 부지가 훨씬 넓어서 시선을 최대한 멀리까지 머물게 하는 시각 전략을 취한 반면에 쉴부른 왕궁의 정원은 언덕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시각 전략을 취한 차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시선을 멀리까지 머물게 하면 커다란 사물들도 작게 느껴지지만 가까운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면 사물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게 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나는 이런 웅장함 또는 권위적인 공간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햇살도 너무 뜨겁다. 궁전 정면에서 Gloriette를 마주하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나무 벽 아래에 가끔씩 놓여 있지만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벤치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그냥 풀밭이나 나무 밑에 누워서 빈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그러면 자연 그 자체인 나뭇잎 사이로 하늘만 보인다. 

나무들을 절벽처럼 깎아서 만들 나무 벽에서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을 다스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정원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볼 수 있다. 식물원 앞 정원에 있는 조경수들은 마치 기하학 도형처럼 만들어져 있음에서 그 욕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의 삶을 아직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원형을 보면서 예쁘다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를 기하학 도형으로 만들어버린 식물원 팡 정원과 전철 역 팡의 튤립

역시 지루했던 스탠딩 공연

아내의 희망대로 저녁에 오페라 극장으로 가본다. 스탠딩 표는 1인당 유로. 정말로 저렴한 가격. 스탠딩 표를 산 사람들은 맨 꼭대기 층으로 안내된다. 좌석 뒤에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다. 

어제 갔던 모차르트 공연 환경보다는 이곳이 훨씬 양호하다. 오페라 전용 극장 건물이라 경사가 있어서 스탠딩이지만 가끔 무대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일찍 입장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극장 내부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화려한 모습. 

그러나 공연은 오늘도 나에게 지루하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 1시간 반이 지나서 저녁 7시가 되었다. 결국 아내를 설득해서 공연이 다 끝나기 전에 극장을 나왔다. 스탠딩 표는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말아야겠다는 나의 소심한 소신이 생겼다.

공연장 내부 모습과 쉬는 시간에 옥상에서 바라본 석양

시원한 국물 국수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보인다. 맛있어 보이는 국물 국수. 속이 시원하다. 가격도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저렴한 편. 두 그릇에 13.8유로, 속도 시원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힘들었던 공연 관람보다 이 국물 국수가 더 좋다. 

시원한 국수와 밤 늦게 도착한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찾아갔지만 너무 어둡다. 내일 다시 오기로 한다. 


심심하면 안돼요! - 직선이 아닌 곡선의 공간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어제 다녀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마침 열고 있던 카페에서 아침 커피와 빵을 주문. 간단한 식사지만 나름 분위기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와 그의 작품이 있는 지역의 안내도

직선을 거부했던 훈데르트바서. 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나는 훈데르트 바서가 심심하면 죽을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이 집을 짓지는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정말로 어디 하나 장난기가 가득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공간들 뿐이다. 직선을 중심으로 한 어른의 딱딱함이 아닌 곡선을 강조한 아이들의 부드러움으로 가득 채운 공간. 재미있다.

오스트리아에는 건물 치료사라고 자신을 칭했던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이 있지만 그 모든 곳을 다녀보기에는 우리가 가진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 다음에 훈데르트바서 만을 주제로 한번 여행을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을 떠나 다시 아톰이 있는 정박지로 향해본다.

버스 77A 종점에서 내려 아톰이 있는 곳까지 공원 산책에 나서본다. 작은 오솔길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 따뜻한 햇살 아래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할아버지가 정겹게 느껴진다.

너무나 아쉬웠던 Jauerling-Wachau 자연공원

아쉽다. 빈이 아니라 이 공원이. 그렇지만 오늘 빈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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