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여행 에세이 172 - 프랑스 궁전
한국에서 캠핑카를 가지고 러시아를 건너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항상 어려웠던 나라가 프랑스이다. 그 이유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명소들을 대부분 방문하려면 북부와 서부지역 그리고 남부지역까지를 여행 루트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생각보다 매우 긴 여행코스가 되고 이는 쉥겐협정에 의한 무비자 방문 최대 기한인 90일 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에서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선택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프랑스 동부지역 중심으로 여행지를 선정했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은 명소를 중심으로 여행지를 선정해야 했다. 그 대상이 바로 프랑스 궁전의 정원.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과 베르사유 궁전의 모델이 되었던 보르비 꽁트 그리고 나폴레옹이 살았던 퐁텐블루. 세 궁전 모두 파리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2019년 5월 5월 8일부터 5월 10일까지의 여행기이다. 그 궁전의 정원 여행을 소개하기로 한다.
보르비 꽁트 성은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가 지은 성으로 1661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유럽 황제가 근대에 지은 성들은 궁전 입구의 크고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된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광장이 있고 궁전 뒤에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정형식 정원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치 구조를 유럽 황실에 유행시켰던 원형 모델이 바로 보르비 꽁트이다.
그 프랑스 정형식 정원의 모델이 되었고 루이 14세가 가지고 싶었던 베르사유 궁전의 모델이 되었던 보르비 꽁트. 궁전은 묵직한 느낌을 잘 드러내 주는 지상 2층 반지하 1층짜리 단독 건물과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가운데에 있는 원형 돔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 원형 돔을 중심 축선으로 하여 길게 뻗은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원근법과 기하학적 배치. 이 모든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 인간은 바로 이 정원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은 기하학적 도형과 같이 매우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세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정원을 바라다보는 궁전 입구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이 세상이 질서 정연하고 매우 균형이 잡힌 세상처럼 보인다. 그 세상이 저 멀리 원근법의 소실점(이 세상 끝)까지 이어진다.
나에게 정원의 백미는 분수대 너머에 있다. 마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정원 끝에서 궁전을 보면 이 세상의 시선 중심에 궁전이 우뚝 서 있다. 궁전에서 정원을 보면 통치자가 지배하는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이 구현되어 있고 궁전 반대편에서 보면 그 세상의 가운데에 궁전 즉 통치자가 위치하고 있다. 얼마나 절묘한 공간 배치인가. 나는 궁전 내부의 화려함보다는 이 정원과 궁전 배치가 가지는 절묘함에 감탄할 뿐이다.
루이 14세가 보르비 콩트에 초대받아 하루 밤을 자고 가려는 예정을 마다하고 밤에 파리로 돌아가서 달타냥을 시켜 니콜라 푸케를 잡아들인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궁전을 가지고 있는 니콜라 푸케를 시기해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황제는 마음만 먹으면 재무장관 푸케보다 더 화려한 궁전을 지을 수 있다. 그러면 그 시기심은 해소된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푸케를 죽이려고 했다. 보르비 콩트를 방문한 후 밤에 파리로 돌아가서 푸케를 죽이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은 바로 보르비 콩트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보르비 콩트는 그 당시에 이 세상이 하나뿐인 황제의 정치 이념과 정치 행위에 가장 부합하는 건축물이었고 황제가 있어야 할 그 중심에 자신의 부하인 니콜라 푸케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그를 가만히 놔둘 수 있었겠는가? 이 세상의 중심에는 황제만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의 중심에 부하가 위치하면 안 된다. 루이 14세가 보르비 콩트 건설에 참여한 장인들 특히 정원가였던 앙드레 르 노트르를 데려가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게 했고 그와 평생 친구처럼 지낸 이유도 이해가 될 수 있다.
분수대 끝자락에 도착하니 봄인데 굵은 비가 내린다. 우산도 없는데 날씨도 급격하게 추워진다. 정원 마지막 부분 관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쉽다.
퐁텐블루는 프랑스 왕들이 가장 사랑했던 궁전이었던 모양이다. 12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퐁텐블루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프랑수와 1세가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궁전으로 개발되었다.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던 19세기 중반까지 황제가 살았던 성이 퐁텐블루이다.
파리 여행을 하면서 베르사유 궁전 여행에 하루를 다 사용하다 보면 가보기 힘든 곳일 수도 있지만 황제의 사냥터였던 퐁텐블루 숲의 경계에 있는 바르비종(밀레의 ‘만종’의 배경인 곳으로 지금도 많은 화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도 함께 들러볼 수 있다.
베르사유 궁전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라 궁전 입구 중 하나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정원 관람은 무료이다. 400년 이상에 걸쳐 지어진 건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때문인지 몰라도 유럽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궁전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퐁텐블루가 베르사유 궁전과 다른 점은 정원이 궁전 건물의 부속이거나 궁전 건물을 시선의 중심에 놓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건물과 정원이 별도의 공간처럼 배치되어 있다. 정원은 궁전 건물을 뒤로 둘러싸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정원은 궁정인들의 휴식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충실한 배치로 보인다.
이 때문에 프랑스 황제들이 좋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때에도 왕들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창경궁을 더 좋아했고 더 오랜 기간 동안 살았다.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퐁텐블루 정문을 통과하면 백마 광장이 있고 그 정면에 페리슈발이라고 불리는 말발굽 모양의 계단이 있다. 이 계단과 광장에서 나폴레옹 폐위가 이루어졌다.
베르사유 궁전은 몇 시간에 관람을 하기에는 너무 큰 궁전이다. 아침 8시부터 매표소 앞에서 대기하여 1번으로 표를 구입하고 입장. 입장은 9시부터인데 엄청나게 긴 줄이 서 있다. 간단한 짐 검사를 마치고 나면 군대 광장을 지나 궁전 안으로 입장하게 되고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원 관람을 하게 된다. 성수기 때에는 3시간 정도 대기해야 입장이 가능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30여분 정도 걸려 입장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함을 위해 만들어진 궁전답게 건물 내부 천정도 높고 화려하다. 겨울의 방에서는 그 화려함의 극치에 관람객 대부분이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곳에서 열렸던 연회의 화려함이 저절로 상상된다. 황제의 방에서 열렸던 침례가 열렸을 장면도 상상이 된다.
아침에 황제가 일어나는 모습과 심지어 대변을 보는 것까지 신하들이 관람하도록 했던 황제. 황제 가까이에서 궁전 의례에 참석하는 것이 권력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이라는 허구를 만들고 이 허구에 집착하게 됨으로써 황제의 권력 강화에 자연스럽게 기여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실현시키는 무대가 바로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이다. 루이 14세에게 궁전은 황제의 권위에 귀족들이 복종하게 하고 복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연극 무대의 장소였다. 실제로 궁전 안은 물론이고 정원에서도 많은 연극과 오페라가 상연되었다.
정원은 황제의 권위에 귀족들의 몸이 복종하고 수용하도록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다. 화려한 아폴론 분수의 분수 쇼도 즐거운 볼거리이지만 이 정원의 교묘한 장치는 궁전 앞에 있는 길고 Green Carpet라는 넓은 잔디밭에 있다. 궁전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면 가장 화려한 라토나 분수가 시선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Green Carpet가 대 운하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 그린 카펫이 시선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대운하까지 이끌어 낸다. 이 그린 카펫에는 폭과 경사를 통해 시선의 집중과 귀족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장치가 숨어 있다.
그린 카페 끝에서 궁전을 바라다보면 약간 높은 듯한 위치에 모든 시선을 담아내는 크기로 궁전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의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경사가 주어져 있다. 그래서 위에 있는 궁전 건물에서는 그린 카펫이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지만 그린 카펫 아래에서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위로 올려봐야 된다. 자연스럽게 정원을 거닐던 귀족들의 몸은 항상 궁전을 올려다보게 된다. 몸이 변하면 의식도 변한다. 의식이 변하면 몸도 변한다. 그러면 이것은 의문이 드는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이게 베르사유 궁전이 가지는 무대로서, 훈련의 장으로서 정치 장치의 핵심이다.
그다음으로 시선 장치로서의 백미는 대운하와 대운하 끝에 있는 나무 벽이다. 대운하의 폭은 Green Carpet 보다 넓다. 궁전 앞에서 내려다보면 Green Carpet의 폭보다 뒤에 길게 뻗은 운하의 폭이 좁으면 운하가 왜소하게 보인다. 웅장한 느낌을 저 세상 끝까지 이어가려면 운하의 폭이 Green Carpet보다 넓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운하의 끝 적당한 곳에 운하가 끝나게 만들어 운하가 저 세상 끝까지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얼마나 절묘한 시선의 조작인가?
그러나 항상 무대로서 궁전만 존재하면 이곳에 살던 황제와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그 분출구가 다르게 마련되어야 했다. 왕궁 안의 휴양지 같은 곳. 그게 바로 그랑 트리아농, 프티트리아농과 왕비의 마을이지 않을까 한다.
궁전과 정원 관람에 상당한 시간과 체력을 쓰고 나이 몸이 지쳐온다. 그러나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왕비의 마을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외쳐댄다.
“원더풀”
왜 이 자연적인 풍경과 닮은 마을에 들어서서 원더풀이라고 왜칠까? 황제와 왕비도 이 곳을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좋아했다면 무대에서 배우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아도 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