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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민 Apr 02. 2021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96 - 네덜란드 헤이그

여유 있는 아침

어제(2019년 7월 2일) 아쉬웠던 로테르담 여행이었지만 하루 밤과 휴식을 취하기에 너무나 완벽했던 헤이그 인근 작은 마을의 스포츠 공원.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나서 밀린 일기까지 작성을 하는 여유를 가져 본다. 

그다음에 슈퍼마켓에 들러 40유로어치의 식량을 구입하여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슈퍼마켓 주차장에 유료 화장실(0.5유로)이 있다. 이런 화장실은 휠체어 이용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내부가 넓어서 우리 부부 두 명이 함께 들어갈 수도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시작되다

헤이그에 도착한 우리는 트램 길가 옆에 있는 무료 주차장에 차를 이동시키고 나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할 겸 휴식을 취한다. 강한 햇살이 수그러들 즈음에 3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향한다. 작은 배들이 다니는 수로, 많은 자전거와 건물을 통과하는 트램 등이 눈길을 끈다.

구글을 이용해서 찾아간 기념관은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문은 항상 열려있지 않아서 벨을 눌러야 한다. 관장님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차이나 타운 인근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 건물에는 태극기가 걸려있다.

저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온다

우리는 사전에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헤이그 밀사 사건. 그러나 전시물을 보면서 아내와 나의 눈에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조선을 떠날 때부터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할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고 조선의 입장을 세계에 알릴 수 방법임을 생각하고 떠난 이준 열사와 일행들. 조선 반도를 떠날 때 이준 열사의 심정 그리고 일제의 로비와 제국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만국평화회의에 참가가 저지당했을 때의 심정, 작은 호텔 방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조선의 독립을 걱정했을 이준 열사의 처절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함께 동행했던 헤이그 특사들의 활동이 기록된 신문에 실린 연설문은 지금 보아도 명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을 담고 있다.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정리해 놓은 전시물. 특히 이위종(하단 오른쪽)이 연설한 연설물을 보도한 평화회의보를 번역해놓은 글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축제때의 해골"

이준 열사는 먼 이국 땅에서 죽었지만 함께 했던 이상설과 명연설을 했던 이위종의 젊은 청년은 조선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이 분들의 뜨거운 마음과 희생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얼마나 큰 빗을 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일제의 잔재가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이 분들을 생각하면 소위 토착 왜구라고 불리는 세력과 흔적을 빨리 지워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헤이그 특사들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다행히도 이 먼 곳의 작은 박물관을 찾는 한국인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 잊지 말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관장님께서 우리 부부를 함께 사진에 담아 주신다. 꼭 이렇게 찍어야 한다고. 관장님의 뜨거움과 희생이 또 한 번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라면 헤이그에 한 번은 가보시면 좋을 듯하다. 
기념관 안에 걸려있는 태극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방명록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한반도의 또 다른 슬픔을 상징하는 곳이 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나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장소를 찾아 가본다. 회의장 건물 앞에 서 본다. 좁은 출입문이 있다. 그 앞에 서 보니 입장을 저지당했을 때 특사들이 느꼈을 좌절감이 상상이 된다. 이 문 앞에서 외국의 기자들을 향해 프랑스어로 연설을 했던 막내 이위종의 당당한 모습도 상상이 된다. 만국평화회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철저하게 제국주의 입장을 대변했던 국제회의. 그 속에서 죽을 때까지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주장했던 열사들이 뿌린 씨앗이 다시 연해주로, 조선반도로, 미국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피워냈다. 또 한 번 특사들이 느꼈을 좌절감과 그를 넘어서고자 온 몸을 바쳤던 의지가 느껴지기에 숙연해지는 곳이다.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넨호프(오른쪽 사진이 회의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만국평화회의 장소 인근에는 평화의 궁전이 있다. 시간이 늦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궁전 앞에 있는 세계 198개 국가를 상징하는 돌기둥(The World Peace Flame)에 한국과 북한에서 온 돌을 찾아본다. 나란히 붙어 있지 않고 서로 반대편에 배치되어 있다. 이 작은 돌까지도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평화의 궁전과 The World Peace Flame

이제 다시 아톰에게로 돌아온다. 직선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아톰에게 돌아오는 길이 수월하다.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인근에 있는 공원의 무료 주차장에서 오늘 밤을 보낸 후에 내일 암스테르담으로 가야 할 듯하다. 밤이 되니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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