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광민 May 17. 2021

일 년간의 캠핑카 부부 여행 결산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217 -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마지막 편

이 글은 15년 된 국산 중고 캠핑카를 가지고 “2018년 8월에 시작하여 2019년 8월에 끝난 세계 여행이 우리 부부와 나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정리이다. 크게 보면 이번 여행이 미친 영향은 1. 부부 관계에 미친 영향과 2. 인생에 미친 영향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질문 1 : 부부가 어떻게 일 년이나 24시간 같이 여행을 할 수 있어요?


부부는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이이다. 그 약속을 얼마나 충실히 지키며 살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내와 보내고 있는가? 


여행 가기 전까지는 아내와 단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부부만 살았던 시간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친척 중 한 명 정도는 좁은 집에 같이 살았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는 아이들 키우느라 또한 정신이 없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내 혼자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는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신혼 때에는 지방 출장이 잦은 직업 때문에 집에 자주 못 들어왔고 일주일에 저녁을 같이 한 적이 한번 정도에 그치곤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에는 군산의 한 대학에서 3년간 연구교수를 하고 그 이후에도 3년여 정도 원주에서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의 절반 정도는 주말 부부처럼 지내게 되었다. 


남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왜 이렇게 붙어 다니냐고 한다. 그러나 결혼 생활 전체를 보면 실제로 같이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말로 캠핑카 여행 1년 동안의 시간이 지난 결혼 생활 30년간보다 더 많을 것이다. 


부부가 24시간 같이 있으면 부부 싸움이 많아지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최소한 우리 부부에게는 그러했다. 아마 다른 부부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캠핑카 여행 내내 참 많이도 다투었다. 다툼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매우 사소한 것들이다. 


작은 일로 싸우고 나면 항상 잠자기 전에 화해를 해야 한다. 아내는 누구의 잘못 때문에 다툼이 생겼는지를 잘 따진다. 대부분 나의 잘못이 많지만 아내가 잘못한 경우에도 우리 둘은 항상 원인을 따져보고 화해를 하고 나서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캠핑카 여행에서는 부부 싸움 중에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매우 작은 일로 자주 싸운다. 그렇지만 꼭 그날 화해를 한다. 사실 아내가 화해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 않는다. 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화해를 해야 한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 그러면 다툼을 통해 아내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되고 깊은 곳에서 사랑하게 되고 서로의 신뢰가 깊어진다. 우리 부부는 그랬다. 


일 년 동안 24시간 같이 살아야 했던 좁은 공간의 캠핑카 여행은 부부간의 다툼의 화해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만들어주었고 그로 인하여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 해남에서 7평의 넓은 호화주택(2.5평 정도의 캠핑카에 비하면 3배 정도 넓은)에서 산 여행 후 일 년 동안에도 행복은 이어지고 있다.  

    

여행 중에 만난 큰 난관은 부부 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행 중에 발생한 큰일은 주로 자동차와 관련된 일이다. 자동차는 우리 여행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다양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항상 함께 난관을 극복했다. 아무도 없는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자동차 바퀴가 빠지기도 했고 내비게이션이 좁은 절벽 위 외길로 데려가기도 했다. 캠핑카 여행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셀 수 없다. 아내와 나는 어려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더 많이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질문 2 : 여행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살 계획인가요?


여행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 중  “일 년 동안 쉬고 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요?”가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행복한 삶을 살면 될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답이다. 


그러나 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그 무엇인가가 나를 행복하지 않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사회가 사회 구성원인 나에게 주는 공포심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공포심.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심. 누군가와 경쟁하여 이기지 않으면 사회적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공포심. 명품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공포심. 개인 보험을 들지 않으면 노년에 잘 살지 못할 것 같은 공포심. 아이들에게 집을 사 주지 않으면 아이들의 삶이 불행할 것 같은 공포심. 통장에 몇 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노년이 불행할 것 같은 공포심. 등등     


사회가 만들어낸 공포심은 몇 페이지를 나열해도 될 정도로 다양하다. 이 공포심 때문에 서로와 협력하고 내 것을 나누어 주기보다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사실 직장 내에서의 스트레스도 사실 알고 보면 상사나 동료와 나와의 경쟁 때문에 발생한다. 직장 내 상사 괴롭힘이나 따돌림 등은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행동 전략일 수도 있다. 


사실 일의 양보다 사람들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경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한 일이라면 일이 많아도 행복하다. 내가 일의 주체가 되면 행복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를 경쟁 상대로 대하고 나를 누르려고 하고 나의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면 인간은 서로 불행해진다. 빼앗은 사람은 계속해서 빼앗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삶 또한 행복한 삶은 아니다. 물론 뺏긴 사람의 삶 또한 행복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 부부가 1년간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많이 이야기 한 주제. 결론은 단 하나. 사회가 나를 옥죄고 있고 불안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삶의 방식을 바꾸어 보는 것. 


이러한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하면 최소한의 돈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의 가치를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말로 돈을 안 벌어도 죽지 않고 잘 살 수 있나? 행복할 수 있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그러기 위해서 일 단계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최소한의 돈만을 벌기로 했다. 캠핑카 여행은 돈을 벌지 않고 사는 삶이다. 부부가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월평균 2백만 원이 안 들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쓰는 돈을 부부가 합치면 이보다 더 많다. 여행 중에 진짜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 돈 안 벌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그리 많지 않아도 된다. 

캠핑카 여행은 이점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아내는 여행이 끝나고 나서 아예 돈을 벌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는 최소한의 돈만을 벌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시간이 많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해남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이 시간은 무료함이 아니다. 내 동료들은 소위 시골에서 무료하지 않느냐고 한다. 아니다. 


하루가 너무 바쁘다. 비가 오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물론 브런치에 글도 써서 올린다. 밤이 되면 좋은 영화를 골라 본다. 해가 뜨면 몸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꽃씨를 뿌려 놓은 정원에서 우리와 함께 하기 힘든 풀들을 뽑는다. 그리고 늦은 아침에 마당에 나와 들판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나서 마을 산책에 나선다. 어머니들 집에 고쳐줄 것이 있으면 고쳐준다. 고추 심기를 한다고 하면 다음날 새벽에 고추를 심으러 간다. 물론 우리 집에는 고추밭이 없다. 그래도 간다. 마늘을 뽑을 때에는 마늘도 함께 뽑는다. 물론 우리 집에는 마늘밭이 없다. 깨를 터는 어머님이 보이면 같이 깨를 턴다. 물론 우리 집에는 깨 밭도 없다. 그래도 어머니들과 함께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어머니가 계시면 짐을 들어 드린다. 우리 집 앞으로 산책에 나서는 어머님들을 우리 집에 모시고 와 집에 잘 자라고 있는 박하로 차를 대접해 드린다. 물 끓이는 전기 값만 든다. 얼마나 들었을까? 한 20원? 모르겠다. 


이 모든 것에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나에게 많은 시간을 동네 어머니들과 함께 나누면 된다. 그러면 우리 집에는 우렁 각시가 다녀간다. 집 앞에는 가끔 맛있는 김치며 된장이며 간장이며 마늘 쫑, 부추 등등이 놓여 있다. 간장과 된장은 너무나 맛있어서  아내는 아예 슈퍼에서 간장과 된장을 사지 못한다. 우렁각시가 가져다 놓은 음식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른다.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까지도 모르는 우렁각시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은 작물을 이것저것 심는 시기이다. 고추, 부추, 대파, 생강, 깨 등이 우리 집 텃밭에도 자라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어머니들이 가져다주신 것들이다. 수박과 참외 그리고 몇 가지는 시장이나 주변 마을의 모종 재배 하우스에서 사 왔다. 그러면 어머니들이 심는 방법을 알려 주시고 퇴비도 가져다주신다. 


우리는 최근에 집에서 우리 밀로 빵을 만들어 먹고 있다. 빵을 사기 위해 읍내까지 가려면 왕복 40km 정도를 달려야 한다. 그 기름값으로 빵을 만들어 먹는다. 빵이 구워지는 내내 빵 냄새가 우리 일곱 평 호화 호텔을 가득 채운다. 초보자가 만들었지만 이웃들과 정을 나눌 정도는 된다. 어머니들께 빵도 조금씩 썰어서 나누어 함께 먹었다. 그러면 어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니 많은 것이 돌아온다. 사실 더 많은 것이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 식단은 마을 어머니들의 음식이 함께 해서 항상 풍성해진다. 


매일 마다 변하는 꽃밭. 5년 정도의 계획으로 300평 정도의 정원을 만들 계획이다. 땅 값도 얼마 하지 않는다. 작년에 뿌린 꽃 씨앗에서 거두어들인 씨앗을 이곳저곳에 뿌린다. 그러면 꽃밭은 계속해서 변화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직접 만든 나무 폴딩 도어 문을 통해 내려다보면서 아침을 먹는다. 그러면 고급 펜션에 여행 온 느낌이 든다. 


이 모든 게 행복하지 않은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적은 소비를 통해 시간이 많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전략은 아직은 성공적이다. 그리고 점점 더 적게 돈을 벌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년부터는 작은 규모이지만 직접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그러면 사회가 나를 옭매이게 만드는 다양한 공포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가 주인이 되고 나와 이웃이 함께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일 년간의 캠핑카 여행은 좁은 공간과 최소한의 자원(물과 전기 등)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우리 부부에게 주었다. 지금 내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시간과 이 공간의 주인이 되어 서로 나누며 사는 현재 우리 부부의 모습은 일 년간의 좁은 캠핑카 여행이 준 선물이기도 한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가 다녀온 캠핑카 세계 여행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음부터는 해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두 번째 여행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별과 재회 그리고 아직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