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34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우리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여행하고 있던 10월 말은 비가 오면 꽤 쌀쌀한 기운이 드는 날들이었다. 잘츠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뜨이는 게 있었다. 바로 걸인들이다. 보통 걸인들이라고 하면 더럽고 건강하지 못한 분들이 상상된다. 그러나 3박 4일간의 잘츠 여행 기간 동안에 구도심 곳곳에서 보이는 걸인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분들과 다른 모습들이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걸인들은 모두 젊고 건강해 보였으며 남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 생김새가 중동지역 사람들처럼 보인다. 혹시 이분들이 유럽의 중요 문제 중 하나인 난민들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그 이후로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분들과 비슷한 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즐겁게 떠들고 지나가는 자리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또는 비닐 하나 뒤집어쓰고 추운 바닥에 앉아서 구걸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 어딘가가 무거워진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던 2018년은 유럽 전체가 중동의 난민 문제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있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난민들이 처해있던 상황들이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저분들도 하루빨리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잘츠는 모차르트의 도시이다. 어디를 가든 모차르트를 모델로 한 기념품 하나쯤 사는 것은 너무 쉬운 도시이다. 그 모차르트의 도시에서는 유람선도 모차르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도심을 지나는 강에는 다양한 형태의 유람선 관광상품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잘츠 카드로 구입할 수 있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침에 먼저 가서 오후 2시 배를 예약했다. 오전에 방문한 모차르트의 집과 생가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벌써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을 위해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딸기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서둘러 2시 유람선에 올라탔다.
관광객들로 가득 찬 유람선은 천천히 남쪽으로 이동한다. 넓게 만들어진 창 너머로 호웬 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구도심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 깊이가 낮은 곳에서는 매우 조심조심, 강 깊이가 있는 곳에서는 가끔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짧은 구도심을 지나면 일반적인 강변 풍경이 나타난다. 그 순간에 우리는 가져온 샌드위치와 케이크로 허기진 배에 열량을 공급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풍경이 아름답지는 않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배가 정지한다. 이제 다시 원래 지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나 보다. 그런데 배에서 음악이 흐르고 이 음악에 맞추어 배가 춤을 춘다. 이 배의 선장은 여자분이었는데 능숙한 솜씨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배를 회전시키고 정지하고 반대쪽으로 회전시키기를 반복한다. 그 순간 배는 주변 풍경을 아름다운 파노라마로 만들어버린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배는 약속한 대로 다시 원래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뭐든지 이렇게 끝나면 재미가 없는 게 아닌가? 마지막이 즐거워야지. 배가 선착장 앞에 도착했는데 지나친다. 그러더니 신나는 모차르트 음악이 나오고 그 음악에 맞추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배가 다시 춤을 춘다. 그리고 구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이 또 한 번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선장의 멘트와 몸짓이 재미를 더하고 관광객들도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친다. 음악이 끝나면 이 공연도 함께 끝난다.
그래, 평범할 수도 있는 것에 재미를 더하면 이렇게 좋을 수도 있는 거야. 여기가 모차르트의 고향인 음악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잘츠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헬브룬 궁전을 찾아 떠나본다. 이 궁전은 잘츠 대주교였던 마르쿠스 시티쿠스가 여름 별궁으로 17세기 초반에 지은 것이다. 정박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정박지에서 아침 산책 겸 걸어가 보기로 한다. 큰길을 벗어나 들어선 길에는 큰 가로수들이 도시를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궁전 입구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궁전에 들어서는 문에는 높은 벽이 양 옆을 둘러싸고 있는 긴 길이 있다.
아마 옛날에는 이 길을 따라서 집주인과 권력자들이 마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다. 이 길 끝에 궁전의 본 건물이 보인다. 궁전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사는 건물이 시선의 중앙에 있게 함으로써 권력자의 권위를 드 높이는 것은 물론 긴 길을 들어가면서 그 권위에 복종할 마음 가짐을 가지게 하려 했을 것이다.
우리도 과거에 마차를 타고 다녔을 사람들이 잠시 되어 본다. 사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중세시대 영주 정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는 고급 리조트 등과 같은 소비공간에서 고급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헬브룬 궁전이 일반적인 궁전과 다른 점은 궁전 뒤에 있는 물의 정원이 가지는 창의성 또는 재미에 있다. 이 물의 정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해야 한다. 표를 사면 입장시간을 알려준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서면 가이드가 물의 정원으로 안내한다.
가이드는 영어와 독일어로 번갈아 가면서 설명한다. 그러나 영어나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관계없다. 왜냐면 무조건 재미있는 시간이 지나가니까!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분수가 여기저기에 있다. 수압으로 움직이는 커다란 인형극장에서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에선가 물이 뿌려질지 모른다. 물터널에서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에서 사진을 찍는다. 한 시간이 안되게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이지만 모두 가이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다. 정말로 재미가 있었으니까.
작지만 어딘가에 있을 분수들에서 갑자기 물이 뿜어져 나온다. 그 장소 하나하나가 스토리텔링의 산물이다. 이 궁전을 지은 마르쿠스 시티쿠스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테마파크를 만들고 기획한 스토리텔링의 대가이다. 그 시대에 구현 가능한 기술을 모아서 재미 하나를 추구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공간을 가지고 싶었고 지구 상의 유일한 공간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권력욕의 주인공이었는지도 모른다.
물의 궁전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 나면 궁전의 정원으로 나온다. 커다란 호수와 넓은 잔디밭이 눈길을 끈다. 그 당시 유럽 귀족들의 선망이었던 정형식 정원이 아직도 깔끔한 상태로 유지, 관리되고 있다. 우리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궁전의 주 건물이었던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으로 개조된 건물은 분명 주교가 살았던 시대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과 그림들 그리고 그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벽화와 중국풍 벽지 등을 통해 주교의 관심이 주로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박물관을 나오면서 왜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가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물의 궁전 또한 이 당시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정원을 만들었는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있는 벽지는 단순한 벽지가 아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최고급 벽지는 그 시대에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을 가진 자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심지어 후추도 그러한 상징물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측면에서 박물관에 후추가 전시되어 있다는 점 또한 쉽게 이해된다. 대주교가 전적으로 통제하는 물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재미도 그 관심의 대상인 것이다.
항상 권력자는 자신이 그리는 이상 세계 또는 권력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나 공간은 최고의 권력자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최고의 권력자는 자신 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17세기의 잘츠 대주교 마르쿠스 시티쿠스는 세속적 권력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궁전과 사물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권한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졌던 시절에 대주교가 가지는 권력이 어떠했는지를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헬브론 궁전이다. 그 시절에 대주교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많은 관광 가이드북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소개되는 헬브론 궁전. 이 궁전 방문을 통해 우리도 은연중에 세속적인 권력을 욕망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을 통제하는 사람에게는 재미도 권력의 상징물이다. 권력에서 소외된 걸인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 잘츠부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