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44 - 스위스 인터라겐
루체른 필라투스 산에서 2박 3일 동안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나서 우리는 인터라겐으로 출발했다. 인터라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고속도로로 달리다가 갑자기 별다른 안내도 없이 일반 도로로 쑥 들어간다. 톨게이트가 없는 스위스 고속도로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일이다. 순간 당황스러워진다.
"설마 몇일 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니겠지?"
일반도로로 들어가니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고도가 순간적으로 높아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 산길 대부분이 굽이 굽이 길이라는 것. 그러한 길을 커다란 트럭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다닌다. 길도 험한데 더 신경 쓰이는 게 또 있다. 우리 캠핑카 아톰 뒤에 빠르게 따라오는 큰 차들이다. 나는 조심조심 운전하게 있다 보니 차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된다. 그러니 큰 차들이 항상 내 꽁무니에 붙어 있게 된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급한 경사길을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톰이 배고프다고 한다. 빨리 기름도 넣어야 하는데 언제 이 경사가 급한 커브길이 끝나게 될까?
드디어 평지에 도착하자 나타난 주유소.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갔다. 기름을 넣기 위해 나와 보니 차 앞바퀴에서 연기가 난다. 순간 당황! 가만히 보니 브레이크 패드 가열로 연기가 나는 것이다. 기름 넣기 전에 차를 옆에 세워놓고 브레이크 패드가 식기를 기다린다. 참 스위스에서 아톰이 고생이 많다.
융프라우요흐를 가기 위해서 거쳐가야만 하는 도시가 바로 인터라겐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인터라겐이 아니라 융프라우요흐를 가기 위한 그린 데발 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며칠째 비워가는 식량을 채우는 일이다. 간단하게 루체른에서 음식을 채웠지만 필라투스 산속 생활에서 다 소비했다. 우리는 냉장고도 작은 용량이고 별도의 창고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씩 음식을 사서 먹는 것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2-3일에 한 번씩 슈퍼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지역마다 지역주민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본다는 장점도 있다.
인터라켄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 근처에 있는 대형 슈퍼. 이곳에서 그린데 발트에서 지낼 며칠 동안 먹을 음식을 가득 채웠다. 대형 슈퍼 앞을 보니 재활용품 가계가 보인다. 그래 스위스 재활용품 가게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여행하는 동안 현지에서 산 와인을 마실 때 컵에 마셔왔다. 뭔가 이럴 때에는 아쉽다. 항상 조금 분위기를 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괜찮은 와인잔이 있을까 하고 찾아본다. 내 눈에 약간 이색적인 디자인의 유리 와인잔이 보인다. 야호! 와인잔 2개와 긴 손잡이가 독특한 포크 2개(한 개는 나중에 잃어버렸다.), 빵 칼 1개를 8프랑(한국돈으로 만원 정도)에 구입하였다. 이때 구입한 와인잔과 포크, 빵 칼은 남은 여행 내내 유용하게 사용했다.
잔돈으로 스위스 프랑 동전을 받았다. 아니 부탁했다. 인터라켄의 주차장도 모두 동전을 받기 때문이다. 주인은 친절하게 동전으로 잔돈을 내어 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인터라켄은 Thun 호수와 Brienz 호수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라겐"은 호수라는 뜻이고 "인터"는 사이라는 뜻이다. 즉, 호수 사이에 있는 도시가 바로 인터라켄이다. 인터라켄을 방문하는 이유는 이 두 개 호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이 도시를 거쳐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목적도 융프라우요흐로 가기 위한 것이지만 이 아름다운 호수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좀 아쉽다. 우리는 인터라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Thun 호숫가 작은 주차장을 찾았다. 주차장 입구에 낮 주차는 가능한데 밤 정박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주차장에는 호숫가에서 쉬어갈 수 있는 간단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주차장 한쪽 끝에 작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그리고 찻 길에서 보이지 않는 건너 화단 나무 뒤에 흰색 머리의 멋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옹을 한 채 깊은 키스를 하고 계신 게 아닌가!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우리 차 운전석이 높기 때문에 보인 것이다. 아마 운전석이 낮은 승용차를 타고 왔으면 두 분이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가 갑자기 나타나면 두 분에게 방해될 까바 차를 조금 멀리 댄다.
그런데 두 분의 키스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된다. 나이가 지긋하신데 깊은 키스를 저렇게 오래 할 정도로 애틋할 수 있을까? 두 분은 어떤 관계일까? 궁금해진다.
나 : “ 자기야, 저분들 나이 들어서 새로이 만나는 관계이겠지?”
아내 : “아닐 수도 있어. 원래 부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분이 지금 새로이 만나 사랑의 감정을 쌓아가는 시간이든 아니든 그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저렇게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고향에서 혼자 계시는 아버님이 갑자기 생각난다.
'아버님도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실 수 있겠구나!'
그래,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은 항상 있는 거겠지.
잠시 후, 두 분은 차를 몰고 유유히 호수가를 떠나셨다. 노인의 사랑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두 분이 떠난 후에, 우리 부부는 호수가로 나와 맑은 물에 발도 담그고 산책을 즐겼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다시 오늘 정박지인 그린데 발트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