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과 낭만의 경계, 화장실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3편 - 우랄산맥까지의 화장실 문화

by 류광민

화장실에 돈 내는 게 어색한 한국인

시베리아 횡단 캠핑카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혹은 어색함 중의 하나가 바로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 도로에는 두 종류의 화장실이 있다. 하나는 큰 도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는 푸세식 무료 화장실이고 다른 하나는 주유소나 트럭 카페 등에 설치되어 있는 수세식 유료 화장실이다. 수세식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한국 분들 중 버스 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는 가끔 문도 없는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길가마다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고 그곳은 반드시 유료화장실이라는 점이다. 사실 화장실 이용료가 비싼 것은 아니다. 15 루블(한화로 약 300원 정도) 정도면 꽤 나름 괜찮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10 루블 화장실도 있고 그보다 더 비싼 곳도 있다. 그러나 유료 화장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인인 나로서는 약간의 거부감이 든다.

화장실과 문화의 차이

유료 화장실은 유럽 많은 나라나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 한국 상황과는 다른 일인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 적은 돈을 받기 위해서 화장실 안에서 하루 종일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점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궁금해서 계산을 해 보았다. 하루에 몇 명이나 이용할까? 러시아 사람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도로변 무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유료 화장실 이용자는 생각보다 적어 보였다. 하루에 2백 명이 이용한다고 해도 3천 루블, 한화로 6만 원 정도이고 한 달 평균 180만 원 정도가 된다. 그러면 관리비용을 제외하면 수입이 150만 원 이하가 될 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건비가 낮은 지역에서는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동시에 건물 땅값에 대한 지대 비용이 낮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국가에서 제공하는 도로변 화장실은 최소 비용으로 운영(옛날 시골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도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곳 들도 꽤 있음)하면서 자국민의 기본 복지를 제공해주는 것이고 그보다 고급스러운 서비스는 이용자 부담원칙에 근거하여 제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공공시설을 지을 때 반드시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한다. 그것이 국가에 의한 공공시설이든 상업 이용시설이든 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비데까지 설치된 화장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화장실에 대한 서비스 정책이 러시아나 일부 유럽 국가들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화장실 이용을 국민의 기본 복지 중 하나로 인식하고 제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슬람 국가에서는 공공시설이든 민간시설이든 간에 기도실이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처럼). 이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경제력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 정말로 궁금해진다. 유료 화장실 문화는 그리스나 터키에 오면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스와 터키에서는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없다. 주유소나 고속도로에서는 항상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캠핑카 여행과 화장실

여하튼 시베리아 횡단 자동차 여행에서 유료 화장실 이용과 무료 화장실 이용 간의 선택에는 유료 화장실이 주는 편리함과 비용간의 함수관계에서 결정되겠지만 무료 화장실이 주는 작은 선물도 존재한다. 시베리아 횡단 도로에서 마주하고 자주 이용하게 되는 도로변 화장실 이용에는 소위 불결함과 냄새, 가끔 닫히지 않는 문들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사건의 우려 등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화장실 문은 다행히도 도로변이 아닌 도로변 반대편 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화장실 일을 보고 있으면 밖에서 아내가 지키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오면 신호를 보내주는 방식으로 우려스러운 일들은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화장실이 오묘해서 변을 배출하기 위해서 앉아 있으면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넓게 펼쳐진 산악 풍경과 가을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들이 하나의 엄청난 그림을 선사한다. 화장실 문이 그림 액자가 되고 반대편 풍경이 그림이 되는 상황. 시골 고택의 창문을 열면 바깥 풍경이 그림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상황이 생긴다. 푸세식 화장실의 불편함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나에게 주어진다.

트럭카페나 주유소에 있는 유료화장실과 반야(샤워실)(왼쪽), 도로변에 있는 무료화장실, 주변 풍경이 그림같다.

캠핑카 여행에서 무료 화장실이 주는 또 다른 혜택이 있다. 시베리아 구간에서는 유럽식 캠핑장을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캠핑카에서 사용하는 오수와 화장실을 치울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눈치를 챘겠지만 도로변 무료 화장실은 시베리아 횡단 캠핑카 여행의 소중한 장소이다. 두 명이 캠핑카 화장실을 이용하면 변기 오수 통이 몇일만에 가득 찬다. 이 폐기물을 무료로 처리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그러나 이 무료 화장실도 우랄산맥을 넘어가면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