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Jul 03. 2022

시가 되는 여름날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비가 내렸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도 비가 내리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다. 


그러나 

작은 시련이 때로는

성장과 성숙을 가져다주어

자신을 더 빛나게 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비가 내리는 날들이 많겠지만,

비가 내리는 날들이

시처럼 아름다운 여름이면 좋겠다.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신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라일라 기프티 아키타




접시꽃

접시꽃




접시꽃 위에 남은

여름 소나기의 흔적


초등학교 축대 위 작은 꽃밭에

높게 높게 꽃을 피운

고운 접시꽃 꽃잎 위에

여름 소나기가 남기고 간

투명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비에 젖어

가슴속 숨겨둔 붉은 응어리들도

밖으로 스며 나와 

꽃잎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빗물에 젖어

내 마음도 스며 나올까 봐

우산으로 몸을 가렸다. 



끈끈이대나물


끈끈이대나물



생일 선물로 외손녀가 사준

끈끈이대나물


내 생일 선물로 

이 꽃을 사기 위해

외손녀가 흔쾌히 아끼는 용돈을 썼다.

이 꽃은 외손녀도 좋아하는 꽃이니 다행이다.


우리 집 발코니에서

이 아이들이 피어나고 있어

시골 꽃밭의 느낌이 들어 참 좋다.


꽃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참 열심히 피어난다.


꽃들이 왜 그리 열심히 피어나는지

이유가 알고 싶지 않은가?


마종기 시인의 답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꽃의 이유/ 마종기)




범부채꽃


범부채꽃



7월은 꽃보다 비가 많은 달이다.


그날도 비가 내렸지만 

가족과 함께 적상산 기슭의 

그 카페에 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 가족은 갑자기 

이산가족이 되었다. 


외손녀와 딸은 

강아지 '감자'를 향해,

그리고 나는

막 피어나는 범부채를 향해

달려갔으니까.


홀린 듯 카메라를 들고 

비에 젖은 꽃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못마땅하게 툭 한마디를 던지고

카페로 올라갔다.


'못 말 려!'


나도 그냥 '젖은 채'로 이 꽃을 

사진에 담았다. 


맑은 빗방울이 맺힌 꽃들이

나를 보며 밝게 웃는 모습이

내 마음속을 

적셔 말릴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에키네시아


에키네시아



꽃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꽃과 나비 또는 꽃과 벌의 관계는 쉽게 알겠는데,

꽃과 나는 어떤 관계일지 생각해본다.


우선

꽃이 나에게 주는 것들은

힐링, 감동, 기쁨, 감사.....


꽃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와 조화를 배운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


하지만

나는 꽃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선뜻 답이 안 나온다.


꽃들도 내가 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이해인 수녀님께 들어본다.


꽃과 나는

"꽃물이 든 마음으로

환히 웃어보는

고운 친구"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꽃은 평범한 인류의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 존 러스킨



메꽃


메꽃


우리 동네 작은 산기슭에

가득 피어나고 있는 메꽃이 

여름의 시를 아름답게 그려 놓고 있다. 


메꽃은 얼핏 보면

나팔꽃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보통 나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시들고 말지만,

메꽃은 하루 종일 피어있다

저녁이 되어야 오므라들게 된다.


다양한 색의 꽃이 있는 나팔꽃과는 달리

메꽃은 엷은 분홍색 한 가지밖에 없다. 


초록잎의 경우

메꽃은 좁고 길쭉하지만

나팔꽃은 하트 모양이거나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우리나라의 나팔꽃은 한해살이 풀이어서

까만 씨가 떨어져 다음 해에 새 순이 나오지만, 


메꽃은 씨를 볼 수 없고

땅속뿌리 줄기로 번식을 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나팔꽃은 morning glory라는 멋진 영어 이름을 얻었지만,

메꽃은 bindweed라는 잡초로 분류된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나는 메꽃을 참 좋아하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골칫거리의 잡초라고 한다. 


하지만 유안진 시인은 말한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신다"라고


이 여름에도

아무도 심지 않고 가꾸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메꽃을 

참 예쁘게도 가꾸어 놓으셨다. 




들꽃 언덕에서/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여름 #시 #꽃 #하나님이_키우시는 #2022년 #대덕교회_소식지 


*이 글은 대덕교회 소식지 <대덕행전> 2022년 여름호에 실린 제 포토에세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을 수 없는 순간-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