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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22.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22

백일홍

나를 붙잡는 순간들-22, 백일홍과 팔랑나비


외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외손녀의 이모와 엄마도 다닌 학교입니다.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학교엔 늘 그만한 아이들이 공부하고,
늘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엄마들이 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앞에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특히 엄마를 닮은 외손녀를 

학교 정문에 서서 기다리다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볼 때면

마치 딸의 어린 시절로

잠시 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학교 담장 밑 축대에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자주 못 오는 아이들 대신

귀여운 백일홍들이 옹기종기 피어나

야외 수업을 합니다.


한적한 야외 교실에는

작은 팔랑나비도 날아와 쉬어갑니다.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져버렸지만,

시월에 피어야 할 꽃들은 여전히 피어나고

그렇게 시월도 벌써 하순으로 접어듭니다.


이 시월에

목필균 시인처럼 나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그리고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느냐고.




시월의 편지/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나를_붙잡는_순간들 #백일홍 #외손녀의_초등학교 #타임머신 #시월의_편지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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