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튤립나무 숲
안경을 끼지 시작한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칠판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두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검사를 해 보니 시력이 0.7 정도라고 해서
바로 안경을 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안경을 끼니 불편하긴 했지만,
칠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투통도 사라져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렌즈와 테를 수없이 바꿔가며
잘 때나 씻을 때를 빼고는
안경은 나와 함께 하는
어쩌면 내 몸처럼 익숙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비눗물로 닦고 물로 헹구어 닦습니다.
그러면 말갛게 세상이 잘 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안경 렌즈에 무언가가 눌어붙어
아무리 비눗물로 닦아도 닦이지 않았습니다.
렌즈 닦는 티슈로 닦아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압축다초점렌즈라 렌즈값이 비싼데
렌즈를 바꾸게 되면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조금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안경을 끼고 차로 갔습니다.
마침 차 안에 안경 닦는 천이 있어
시험 삼아 안경에 입김을 불고 닦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비눗물로는 그렇게 안 닦이던 얼룩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안개가 자욱이 낀 숲 속은 신비롭지만,
해가 밝게 뜨면 안개는 지워집니다.
안개의 지우개는 해와 기온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안개처럼 낀
많은 상념과 걱정들도
그 얼룩을 지우는 지우개가 각각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돈이, 때로는 성취가
그리고 많은 경우에 믿음과 사랑이.
이 중 만능 지우개는 아마도 믿음과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갯속으로 2022년이 저물어갑니다.
2023년의 새해가 오면
마음속 안개가 걷히고
더 맑고 좋은 세상이 펼쳐지게 하기 위해
내 마음을 닦는
가장 적절한 지우개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안개숲/ 문봉선
언제 숲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갇힌 내 몸을 열고싶다
늘 있다가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너에게 젖어들고 싶을 뿐이다
Pentax K-1/ HD PENTAX-D FA 24-70mm F2.8ED SDM WR
55mm, ƒ/3.5, 1/25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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