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23

무스카리 muscari

by 박용기


봄이 되면 땅에서 쑥 꽃대를 올리고

작은 푸른 종을 가득 달고 피어나는 꽃

무스카리입니다.


무스카리는 유라시아가 고향이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작은 종처럼 보이는데

서양사람들 눈에는 포도송이처럼 보였나 봅니다.

영어로 포도 히야신스 (grape hyacinth)라고도 부르니 말입니다.


무스카리(muscari)라는 이름은

머스크 (musk)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moschos (μόσχος)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일부 종류의 꽃에서 나는 향기 때문입니다.


꽃말은 '실망' 혹은 '실의'입니다.

이렇게 예쁜 꽃의 꽃말이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인데

전설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은 소년 히야킨토스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늘 이런 사랑을 시기하는 신이 존재하죠.

바로 바람의 신 제피로스였습니다.

그는 아폴론과 히야킨토스가

원반 던지기를 하며 노는 모습에 질투하여

바람의 방향을 바꿔

원반이 히야킨토스의 이마에 맞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야킨토스는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빠진 아폴론이

히야킨토스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땅에 '슬프다'라고 썼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무스카리 꽃이 피어났습니다.


아폴론의 실망과 실의가

기쁨으로 피어난 꽃

무스카리의 전설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고

이른 봄에 땅에서 낮게 피어나는 꽃은

고통이나 실의를 이기고 피는

희망의 꽃 같습니다.

부활을 기뻐하며

봄날을 기도하는 꽃 같기도 합니다.




봄날, 사랑의 기도 /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 보다도 작은 것도 좋다고,
많은 것 보다도 적은 것도 좋다고,
높은 것 보다도 낮은 것도 좋다고,
빠른 것 보다도 느린 것도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250s, ISO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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