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1

비가 그린 그림

by 박용기


장마가 시작되면서

많은 비가 쏟아집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장대비 속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비를 구경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이 듦의 좋은 점 중 하나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외손녀의 가방이

제법 젖어 있어

드라이어로 말려주며

오랜 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방수라도 되지만

그때엔 방수도 안 되는 천가방이었습니다.

한 손엔 책과 도시락으로 빽빽해진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는 약해빠진 비닐우산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정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만원인 버스에서

탈출하다시피 겨우 내린 곳은 안국동 로터리.

그곳에서 화동언덕의 학교까지

장대비 속에 걸어가다 보면

온몸과 가방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교실에 도착하면

젖어서 두꺼워진 책들을 꺼내 말리는 일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습니다.


비 오는 창밖을 보다

문득 비가 창에 그린

그림 한 폭을 발견했습니다.

저만의 감성으로

자연의 추상작품 하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장마철이면 떠오르는

희미해져 가는 옛 추억의 조각들이

오늘도 빗 속에서 흘러내립니다.



장마 /장성희


빗방울 하나에도

떨어지는 이유가 있네

빗방울 하나에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네

이렇게 하늘이 우는 날

떨어져 멍들은 꽃잎에도

흩어져 내리는 잎새들도


비와 비 사이

서러운 곡예일랑

우산일랑 접어놓고

온몸으로 잔을 드세

슬퍼 누운 꽃잎들에게

하늘이 베풀어주는가

씻김굿의

눈물 한마당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20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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