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4

메꽃 Calystegia sepium

by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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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꽃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고

나팔꽃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하는 꽃


그런 메꽃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안 신인의 '메꽃'이라는 시를 보며

"키 큰 명아주 줄기를 타고

메꽃이 한 송이 불을 밝혔다.

그 존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참으로 아득한 것이다.

무욕무취의 세계는 메꽃을 닮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라고 평했습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메꽃도

비 내리는 날은

저에게는 더 특별한 꽃이 됩니다.


나팔꽃은 아침에만 피고 지지만,

메꽃은 아침에 피어 늦은 오후까지 피어있습니다.

나팔꽃은 하트모양의 잎이지만,

메꽃은 길쭉한 잎입니다.

나팔꽃은 고향이 인도이지만,

메꽃은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살던 꽃입니다.

나팔꽃은 한해살이 꽃이지만,

메꽃은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그런데 왜 메꽃?

메꽃은 씨를 잘 맺지 못하고

뿌리 형태의 땅속줄기로 번식합니다.

그런데 이 땅속줄기에 전분이 많아

옛날 식량이 부족할 때

밥 대신 먹었던 구황식물이라고 합니다.

옛날 제사상에서

밥을 올릴 때 '메'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즉 밥을 '메'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밥을 대신했던 '밥꽃'이라는 의미로

'메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꽃이 아니네요.

꼭 있어야만 하는

고마운 꽃입니다.




메꽃/ 이안


뒤뜰 푸섶

몇 발짝 앞의 아득한

초록을 밟고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에 핀

메꽃 한 점

건너다보다


문득

저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이


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를 한번쯤

없는 듯 꽃 밝히기를

바래어 보는 것이다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40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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