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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Sep 17. 2020

쉼, 제주-11

아침 산책을 나갔던 올레길에서

저 멀리 나무 사이에 피어있던 하얀 꽃

그 꽃을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꽃이어서

마음에만 담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 해변가 길가에서

다시 이 꽃을 만났습니다.

하늘타리.


남쪽에서만 만날 수 있는 꽃으로

박과에 속하는 덩굴 식물이라

박꽃처럼 해가 질 무렵에 피어나

실모양 꽃잎들을 펼치며

밤을 즐기지만

아침이 되면 곱슬머리가 되어 스러진답니다.


저녁녘에 만난 아이인데도

끝물의 느낌이 드는 것은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는 때라서 인가요?


가을이 조금씩

여름이 내어 준 자리를 물들여갑니다.

가을을 좋아하면서도

떠나가는 여름의 뒷모습은 늘 쓸쓸합니다.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쉼, #제주도 #하늘타리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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