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2

별빛정원

by 박용기
절굿대 Echinops setifer


둘째 날 점심은

욕지도에서 해물라면 맛집으로 알려진

해녀촌식당이라는 곳에서

해물라면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숙소를 나서면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언덕 쪽으로 급커브를 돌아 올라가라고 안내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살면서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편안하다'는 속설을 믿는 터라

군말 없이 가라는 데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은 들을 수 없고,

옆에 타고 있던 아내도 길을 모르니 아무 말이 없고,

내비게이션의 안내하는 여자 말만 들을 수밖에.....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길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는

좁고 구불거리는 이상한 길로 안내를 계속하였습니다.

간신히 그 길을 빠져나오고 보니

허무하게도 큰길로 쉽게 올 수 있었던

통영 가는 배 선착장 부근의

욕지도 번화가(?)에 도달했습니다.


삶이란 때로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갈 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돌아 돌아 힘들게 갈 수도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해주려 했나 봅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후기에는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린 후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집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이날은 바로 자리에 앉아

정말 푸짐한 해물라면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록시니아 실바티카(Gloxinia Sylvatica)


점심을 먹고는 너무 더워

정원이 예쁘다는 별빛정원카페에 가서 쉬기로 했습니다.

정원에 들어서니

제법 큰 정원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그곳에 앉아 커피를 즐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위를 피해 작은 실내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간 사이

잠시 절굿대라는 꽃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야생화지만 꽃이 특이해

요즈음은 정원에도 이렇게 심어 놓았습니다.


테이블이 세 개인 작은 실내에 들어서니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카페 주인장이 은퇴한 교장선생님인지

선생님들의 응원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루과이 아브틸론


교장선생님이 직접 들고 온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막 더위를 식히려던 차에

한 팀의 여자손님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 것처럼

볼륨을 최대한 높여 수다를 떨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저히 거슬려 아내는 그냥 나가자고 했습니다.


요즘 카페에서 자주 겪는 일이지만

다른 손님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조용히 커피나 차를 즐기며 쉬고 싶어 하는

다른 손님들도 배려할 줄 아는

좀 더 성숙한 카페문화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아내를 따라 나와 정원을 지나가면서

날씨가 더워 정원에 머물 수 없는 터라

곳곳에 피어있던 꽃 몇 송이를

빠르게 사진에 담았습니다.

처음 보는 글록시니아 실바티카와

우루과이 아부틸론도 있었습니다.

보랏빛의 클레마티스는

더위에 조금은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더위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잠시밖에 머물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클레마티스
클레마티스




여름 정원/ 성동혁


누가 내 꿈을 훼손했는지


하얀 붕대를 풀며 날아가는 새 떼,

물을 마실 때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앉는 일 함께 멸망하고온 것들


그녀가 나무를 심으러 나갔다 나무가 되어 있다


가지 굵은 바람이 후드득 머리카락에 숨어 있던 아이들을 흔든다

푸르게 떨어지는 아이들


정적이 무성한 여름 정원, 머무른다고 착각할 법할 지름,

계절들이 간략해진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원에 있다 슬프고 기쁜 걸 청각이 결정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눈을 감고도 슬플 수 있는 이유다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다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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