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여행 - 4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

by 박용기

레보드 프로방스를 구경한 후
버스로 약 30분 거리(29 km)에 있는 아비뇽으로 향했다.



아비뇽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우리의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아비뇽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13세기 말, 권력이 강해진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Philippe IV)가 성직자 세금 문제와 교회 재산에 과세하려 시도하면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 (Boniface VIII)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왕은 1303년 여름에 심복 기욤 드 노가레 (Guillaume de Nogaret)를 비밀리에 파견하여, 로마의 동남쪽 아냐니 (Anagni)의 별궁에 머물고 있던 교황을 납치한다. 제후들의 반발로 3일 뒤에 석방되지만, 심리적 충격을 받은 교황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1309년 후임자로 프랑스인 주교이던 클레멘트 5세(Clément V)가 새로운 교황으로 추대되자, 막강한 힘을 내세워 교황을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 후 68년 동안 교황청의 역할을 담당하다가, 1377년 그레고리 11세(Grégoire XI) 교황이 로마로 귀환하면서 영예의 시대가 마감한다. 교황이 아비뇽 교황청에 있었던 기간을 아비뇽 유수라 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황은 7 명으로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그 후, 프랑스 혁명(1789년) 직후 프랑스 국내의 교회재산은 몰수되고 아비뇽 지방을 프랑스가 합병하였다.



버스는 교황청 전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론강 변에 먼저 도착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였다. 강 건너편에 펼쳐져있는 왕궁 같은 모습의 교황청과 강을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서 있는 다리 하나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우리 숙소는 교황청이 있는 성 안에 있는 호텔이어서 버스가 가까이 갈 수 없어 성 밖에 주차하였다. 짐은 호텔에서 옮겨주기로 하고 우리는 중세에 만들어졌을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였다. 짐을 방에 두고 바로 교황청 구경에 나섰다.


교황청은 외관만 남고 내부의 모든 시설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과거의 모습을 각 방에 있는 영상자료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교황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연회장과 음식을 조리하던 주방의 규모는 요즈음 특급 호텔의 연회장 같은 느낌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포크를 사용할 줄 몰랐다고 한다. 영상 자료를 보니 식탁에는 오로지 나이프만 놓여있었다.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로부터 포크가 프랑스에 전해 진 것은 르네상스 이후였다고 한다.

교황의 집무실 벽화는 성경의 이야기가 아닌 사냥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그 당시 그런 그림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란다. 그 중 새와 새장 그림들도 있었다. 그 당시 새는 유일하게 하늘을 날아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하며, 새장에 갇힌 것 같은 교황 자신이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큰 권세를 누렸던 교황도 교황청이 화려하고 웅장했던 저택이나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는 장소 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막강한 힘의 프랑스 왕의 감시를 받는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교황청 구경을 마치고 교황청 앞 마당에서 출발하는 미니 기차를 탔다. 구 시가지를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였다. 좁은 골목 골목을 기가 막히게 잘도 돌아 다녔다. 가는 곳 마다 오래 전 아비뇽의 빛났던 영광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처음 아비뇽에 들어와 보았던 론강을 가로 지르다 말고 중간에 멈추어 버린 다리가 가까이 있었다. 아비뇽 다리라고도 부르는 생 베네제 다리다. 생 베네제 다리 (Pont St. Bénezet)는 1177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총 길이 900 미터나 되는 다리로 118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베네제 (Bénezet)라고 불리는 젊은 목동이 ‘아비뇽’에 다리를 만들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1177년 산에서 내려왔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큰 돌들을 혼자 들어 강에 던져 넣거나,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천사가 도움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후 홍수로 인하여 파손되고 붕괴된 것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사용하였지만, 1680년 대홍수로 3개의 아치와 성인을 기리기 위한 ‘생 니콜라’ 예배당만 남은 상태로 파괴되어 현재는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어쩌면 끊긴 다리이기에 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의 한 때에 영광을 지니고 있는 아비뇽도 이제는 먼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채 흐르는 론강물처럼 세월이 흘러간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2018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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