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있던 아비뇽
레보드 프로방스를 구경한 후
버스로 약 30분 거리(29 km)에 있는 아비뇽으로 향했다.
13세기 말, 권력이 강해진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Philippe IV)가 성직자 세금 문제와 교회 재산에 과세하려 시도하면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 (Boniface VIII)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왕은 1303년 여름에 심복 기욤 드 노가레 (Guillaume de Nogaret)를 비밀리에 파견하여, 로마의 동남쪽 아냐니 (Anagni)의 별궁에 머물고 있던 교황을 납치한다. 제후들의 반발로 3일 뒤에 석방되지만, 심리적 충격을 받은 교황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1309년 후임자로 프랑스인 주교이던 클레멘트 5세(Clément V)가 새로운 교황으로 추대되자, 막강한 힘을 내세워 교황을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 후 68년 동안 교황청의 역할을 담당하다가, 1377년 그레고리 11세(Grégoire XI) 교황이 로마로 귀환하면서 영예의 시대가 마감한다. 교황이 아비뇽 교황청에 있었던 기간을 아비뇽 유수라 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황은 7 명으로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그 후, 프랑스 혁명(1789년) 직후 프랑스 국내의 교회재산은 몰수되고 아비뇽 지방을 프랑스가 합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