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랑 산다-2
더운 여름날 생각나는 시원한 아이스커피. 어느 그릇에 담아야 가장 시원함을 잘 느낄 수 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투명한 유리컵이다. 이는 투명한 컵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아이스커피의 색과 맛, 분위기까지 담아내는 감각적인 그릇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있는 유리 제품들과 유리의 역사
집안을 한 번 둘러보면서 유리로 만든 물건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하자. 주방에는 유리컵, 각종 유리병, 유리접시나 믹싱볼, 냉장고 안의 유리 선반, 전자레인지의 앞면 유리, 식탁의 상판 유리 등이 눈에 띈다. 거실에 나오면 밖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창문 유리, 조명 등, TV 모니터, 시계 유리, 액자 유리 등이 있고, 화장실에는 큰 거울이 있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의 액정도 유리다. 보이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가능하게 하는 광섬유 케이블도 유리다.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유리는 언제부터 사람들 곁에 존재했을까?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에서 유리를 사용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시기는 기원전 3,000년경이다. 초기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유리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를 들어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용암이 급속히 냉각되며 생성된 흑요석(오브시디언, obsidian) 등을 활용했다. 흑요석은 흑색, 갈색 혹은 녹색을 띠는 투명에서 반투명한 유리 형태로 매우 날카롭게 쪼개져 석기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장신구 등으로 쓰였다. 그러다 기원전 1,500년경에 이집트에서 작은 유리 용기를 제작하는 코어 성형법이 개발되었다. 코어 성형법(core-forming)은 녹은 유리를 고체 중심(Core, 코어)에 입혀가며 용기를 만드는 기법이다. 아직 블로우잉(glassblowing) 방법이 발명되기 전이라, 얇고 정교한 유리 용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래, 점토, 동물 뼈 재 등을 섞어 반죽처럼 만든 다음, 막대에 끼워 병, 항아리 등 원하는 용기 형태의 코어를 만들었다. 가열된 녹은 유리를 코어에 돌리거나 감싸며 입힌 후 손으로 다듬거나 도구로 눌러서 입구와 몸체를 마무리한 후 천천히 냉각한 뒤, 내부의 코어 물질을 긁어내어 유리병이나 항아리의 빈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기원전 1세기 경에는 시리아 지역에서 가열된 유리관에 공기를 불어넣어 병 같은 형태를 만드는 글라스 블로우잉 법이 개발되어 로마제국 전역에 퍼지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고급 저택에는 창문에 얇은 작은 유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5세기 이후에는 색유리나 모자이크, 무늬 유리 등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해서 중세에는 교회 창문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의 전성기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유리공예가 예술로 승화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유리도 실용적인 제품과 예술품을 넘어 과학기술 발전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망원경, 현미경, 안경 등 정밀광학기기 제작에 유리가 필수 재료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갈릴레오, 뉴턴, 루이 파스퇴르 등이 이룩한 물리학 및 미생물학 등 과학 혁명에 유리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유리는 첨단과학 시대에도 강화유리(tempered glass), 방탄유리, 복층 단열유리, OLED,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용 초박막 유리(고릴라 글라스, Gorilla Glass), 통신용 광섬유, 태양광 패널 유리 등의 모습으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유리는 왜 투명할까?
유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투명함이다. 유리가 투명한 것은 빛이 유리를 통과할 때 산란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리는 고체지만 액체와 같은 원자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을 ‘비정질(amorphous)’ 물질이라 한다. 마치 물처럼 내부 원자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어 빛이 특정 결정 구조에 부딪혀 산란되지 않는다. 물의 고체 형태인 얼음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유리에 입사된 빛은 내부에서 흡수되지 않아 그대로 밖으로 통과하게 된다. 조금 어려운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물질 내에 들어온 빛이 흡수되려면 빛의 에너지가 물질 내 전자의 에너지 준위 차, 즉 밴드갭보다 커야 한다. 하지만 유리의 주 재료인 이산화규소(SiO₂)의 밴드갭은 약 9 eV로 매우 커서 자외선의 에너지보다도 높기 때문에 가시광선은 흡수되지 못하고 통과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유리가 다 맑고 투명할까? 그렇지 않다. 맥주를 담는 유리병은 대체로 어두운 갈색이고, 포도주를 담는 유리병은 녹색 계열, 향수나 고급 음료를 담는 병은 청색을 띠기도 한다. 많은 식품이나 약품은 빛, 특히 자외선에 노출되면 산화가 빨라지고 성분이 변질될 수 있는데, 색유리는 이러한 빛을 차단하여 제품의 품질과 안정성을 높이고 시각적 청량함이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용된다.
유리의 색은 대부분 유리 내부에 불순물로 존재하는 금속 원소의 산화물에 의해 만들어진다. 철이나 코발트와 같은 특정 금속 이온은 가시광선 중 특정 파장을 흡수하고, 나머지 파장만 통과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금속 불순물이 포함된 유리는 흡수되지 않은 색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철(Fe³⁺) 이온은 파란빛을 흡수하여 연한 노란색을 띠게 하고, 코발트(Co²⁺) 이온은 오렌지 및 빨간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보이게 한다. 또한 크롬(Cr³⁺) 이온은 녹색 유리를 만들어준다. 그 밖에 망간은 자색이나 갈색, 니켈은 갈색, 구리는 루비색이나 녹청색을 내게 된다.
유리컵이나 유리병의 제작기술
유리의 기본 재료는 규사 혹은 이산화규소(SiO2)며, 유리의 약 70 ~ 75 %를 차지한다. 여기에 용도에 따라 다른 첨가물을 섞어 유리를 만들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유리는 규사에 용융점을 낮추기 위해 탄산나트륨(Na₂CO₃)을 첨가하고 화학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석회석(CaCO₃)을 첨가하여 만든다. 이 유리는 첨가되는 재료의 이름을 따서 소다석회 유리(soda-lime glass)라 부른다.
이 재료를 1,500°C 내외에서 녹여 유리 원액을 만든다. 병을 만드는 과정은 먼저 용해된 액체 상태의 유리를 떠서 병 모양의 금형에 담고 공기를 불어넣어 병의 바닥 부분을 만든 후 다른 금형으로 옮겨 다시 공기를 불어 넣는 블로우잉 과정을 거쳐 병 모양을 완성한다. 제작된 병은 약 550°C 내외의 온도로 가열하여 내부 응력을 풀어 주기 위한 어닐링을 하며 이후에 서서히 냉각하여 내부 응력이 없도록 한다. 유리컵의 경우엔 유리 원액을 금형에 넣고 금속 플런저라는 것으로 눌러 모양을 성형하거나, 얇고 정교한 컵은 병처럼 공기를 불어넣는 블로우잉 성형 방식으로 제작한다. 유리 공예품의 경우 장인들은 긴 빨대로 공기를 입으로 불어가면서 유리 풍선으로부터 정교한 모양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유리는 왜 잘 깨지지?
어릴 적 공놀이를 하다 실수로 유리창을 깨기도 하고, 언젠가 유리컵을 잘 못 다루다 깨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유리는 매우 단단하지만 잘 깨지는 물질이다. 유리의 구조는 규소(Si)와 산소가 3차원적으로 연결된 그물망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결합은 단단하지만 유연성이 없어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탄성 변형이 없이 바로 끊어져 버리기 때문에 깨지게 된다. 또한 유리 표면에 미세한 흠집이나 기포가 있을 가능성이 많은데, 충격이 가해지면 이 결함에 응력(應力, stress)이 집중되어 깨지는 시작점이 되며 균열이 쉽게 성장하며 깨지게 된다.
뜨거운 물을 찬 유리잔에 붓다 유리잔이 갈라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유리는 열에 따른 길이 변화의 정도인 열팽창 계수가 낮지만 전체적으로 균일하지 않아 부분적으로 급격히 가열하거나 냉각하면 내부에 응력 차이가 발생해 파괴되는 열충격 파괴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유리가 다 이렇게 열충격에 약할까? 그렇지는 않다. 특수하게 만들어진 강화유리는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도 잘 견디게 된다. 이러한 열충격에 강한 강화유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템퍼드 글라스(tempered glass)라 불리는 강화유리는 일반 소다라임 유리를 약 620~650°C로 뜨겁게 가열한 후 바로 차가운 공기로 유리 겉면을 빠르게 식힌다. 그러면 먼저 식은 겉면은 압축 응력(compressive stress)이 생기고, 내부는 보다 천천히 식으면서 인장 응력(tensile stress)이 만들어져 열과 충격에 훨씬 강한 유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열 강화 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4~5배 더 강하고 내열성이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에서도 조각으로 깨지지 않으며 깨질 때 작고 둔한 조각으로 부서져 다칠 위험이 적어 안전한 유리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건축용, 자동차 창문, 샤워 도어 등에 사용된다.
또 다른 열충격 강화 유리는 미국의 유리회사인 코닝(Corning Inc.)에서 개발한 파이렉스(Pyrex) 유리다. 파이렉스 유리는 붕규산 유리 (Borosilicate glass)라고도 불리는데, 열팽창계수가 낮은 붕소(B₂O₃)를 함유하고 있어 온도 변화에도 유리의 부피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열 충격에 매우 강한 유리가 된다. 실험실의 비커, 오븐용기, 유리 주전자 등에 사용된다.
이 밖에도 화학적 강화(Chemical Strengthening) 유리도 있다. 열 대신 이온 교환을 통해 유리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유리 조각을 용융된 칼륨 염에 담가 유리에 포함된 나트륨 이온을 칼륨으로 대체하면 칼륨은 나트륨보다 더 견고하여 유리의 강도가 향상된다. 화학 강화 유리는 높은 긁힘 방지성을 가지며 표면 압축 강도도 열 강화 유리보다 더 높다. 즉 힘을 가해도 깨질 가능성이 훨씬 적다. 이렇게 제작된 유리는 스마트폰 화면, 카메라 렌즈, 항공우주 부품 등 고급 응용 분야에 사용된다.
유리컵의 종류와 과학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유리컵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물, 주스, 탄산음료 등 일상 음료를 마실 때 사용하는 손잡이가 없는 일반 컵인 텀블러(tumbler), 칵테일, 위스키 등을 마실 때 사용하는 길쭉하고 얇은 텀블러인 하이볼(highball), 위스키, 칵테일 등을 얼음과 함께(온더락) 마시는 데 사용하는 올드패션드(old-fashioned), 소주나 테이스팅에 사용하는 샷글라스(shot glass), 커피나 따뜻한 음료를 마실 때 사용하는 손잡이 달린 두꺼운 컵인 머그잔(mug), 뜨거운 차나 전자레인지에 가열하는 음료용 내열 유리컵인 스팀 글라스(heat-resistant glass), 와인을 마실 때 사용하는 와인잔, 샴페인이나 탄산 와인용의 길고 좁은 유리컵인 플루트(flute glass), 맥주잔, 보온 보냉용 2중 벽을 가진 더블월 컵(double wall) 등이 있다. (인포그래픽 참고)
대부분의 유리컵은 규사(SiO₂, 이산화규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소다라임 유리다. 유리는 금속에 비해 열전도율이 낮은 물질로 음료 온도 유지에 유리하며, 두꺼운 컵일수록 열 보존력이 좋다. 유리의 굴절률은 약 1.5로 액체의 투명함과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으며, 고급 유리는 굴절률이 더 높아 음료 색상과 반짝임을 더 잘 표현해 줄 수 있다.
유리컵 중에는 크리스털 유리로 만든 장식적인 컵도 있다. 크리스털 유리는 산화납(PbO)을 첨가하여 일반 유리보다 굴절률이 높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광택을 낸다. 납이 포함되어 유리가 더 부드러워 정교한 커팅과 조각이 가능하여 다양한 패턴과 디자인 제작에 적합한 고급 유리다. 하지만 납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 때문에 최근에는 납 대신 바륨, 칼륨 및 아연 등을 넣은 무연 크리스털 유리를 사용하는 추세다.
와인잔은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다른 모양의 잔을 사용하는데, 단순히 멋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과학적인 뜻이 담겨 있다. 적포도주는 일반적으로 탄닌이 많고 구조가 복잡해 산소에 노출되면 맛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풍부해진다. 와인이 공기와 잘 접촉하게 하여 이 과정을 돕기 위해 적포도주 잔은 넓고 둥근 잔 몸체를 가지고 있다. 한편 백포도주는 낮은 온도에서 마셔야 맛이 좋고, 적포도주에 비해 향이 약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열전달을 최소화하고 향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적포도주 잔보다 작고 입구가 좁은 형태의 잔을 사용한다. 또한 샴페인처럼 탄산이 있는 와인은 기포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길고 좁은 플루트(flute) 잔을 사용한다. 와인잔들은 손으로부터의 열전달을 최소화 하기 위해 길고 좁은 손잡이를 가지고 있다.
미래의 유리
인류와 5,000년 이상 함께하면서 그 유용성이 늘어나고 있는 유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앞으로 등장할 유리는 또 어떤 모습일까? 전기나 열 및 빛 자극을 가하면 투명도, 색상, 반사율 등이 변하는 스마트 유리, 즉 전기 변색 유리, 열변색 유리 및 광변색 유리들이 사용될 것이다. 유리 안에 투명한 태양전지층을 삽입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유리가 등장하여 빛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전기도 생산하는 건물이 등장할 것이다. 더 나아가 깨지거나 긁혔을 때 스스로 재생하는 자기 치유 유리(self-healing glass)가 등장하여 스마트폰, 자동차 유리 등에 활용될 것이다. 또한 주변 온도나 햇빛 강도에 따라 자동으로 열을 차단하고 빛의 강도를 조절하는 기후 반응 유리도 등장하여 지속가능 건축의 핵심 자재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5 여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글을 실어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멋진 편집을 해준 '(주)홍커뮤니케이션즈'에 감사드립니다.
*사진 및 그림 출처: Pixbay, KRISS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