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맛의 비밀

by 박용기



토마토(tomato)의 우리말 이름은 한해살이 초본에서 나오는 감이라는 뜻으로 ‘일년감’, 한자어로는 ‘남만시(南蠻柿)’ 즉 ‘남만에서 온 감’이라는 의미로도 불린다.

남만은 보통 중국의 남쪽 이민족을 뜻하지만 원산지인 남미를 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어의 토마토나 스페인어의 토마테(tomate)는 원산지인 아즈텍어 토마틀(tomatl)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토마토를 식재료로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가 ‘뽀모도로(pomodoro)’라고 불리는데, 이는 ‘황금 사과’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 처음 전해진 토마토가 노란색이었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스페시데스 동산에서 자라는 황금 사과와 연관을 지어 붙인 이름으로 추정된다.

토마토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의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야생에서 자라는 작은 열매로, 재배되거나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 후 중앙아메리카로 옮겨져 마야 등에서 사람들이 이 열매를 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에는 남부 멕시코 등지에서 재배되었다. 토마토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건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남미로부터 유럽과 아시아에 토마토를 전했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토마토는 가지과의 식물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한해살이풀로, 노란색 꽃이 피며 꽃이 진 후 열매가 열려 자란다. 우리는 많은 경우 토마토를 야채로 분류한다. 그래서 피자, 파스타 등 여러 가지 요리나 샐러드의 주요 식재료로 사용 하지만, 때로는 과일처럼 간식이나 후식으로 먹기도 한다. 그렇다면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과일과 채소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인터넷의 <나무위키>를 한 번 보기로 하자. 일반적인 과일의 정의는 "나무에서 나는 단맛이 포함된 식용 가능한 열매"다. 풀에서 수확하는 열매는 열매채소, 나무에서 수확하는 열매는 과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풀에서 나는 식용 가능한 열매"는 엄밀히 말해 과일이 아니다. 즉 딸기, 수박, 참외, 바나나 등은 과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딸기, 수박, 바나나 등을 과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과채류'라는 범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과일은 영어로는 ‘fruit’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우리의 ‘과일’과 영어의 ‘fruit’은 조금 다른 정의를 가진다. 식물학적인 ‘fruit’의 정의는 꽃으로부터 만들어지며 씨를 가지고 있어 식물의 재생산 과정을 도와주는 열매다. 반면 야채(vegetable)는 뿌리, 줄기 혹은 잎 등 식물의 먹을 수 있는 일부분을 의미한다. 즉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분명 ‘fruit(과일)’에 속한다. 이러한 식물학적 분류에 따르면, 오이, 호박, 가지, 고추 등도 ‘fruit’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도 조리학 분야에서는 토마토나 오이 호박 등은 야채로 분류하고 있다.


토마토의 분류 문제가 미국의 연방 대법원 판결까지 간 재미있는 사례도 있는 것을 보면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는 우리만 헷갈리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887년 미국에서는 과일에는 붙지 않고 채소에만 세금을 붙이는 관세법이 통과되었다. 그래서 토마토를 수입하던 사람들과 세금을 부과하려는 정부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였다. 이에 189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토마토가 저녁 식사에는 나오지만 후식으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조리학 분야의 의견을 받아들여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했다.



토마토 맛의 비밀

필자가 좋아하는 피자 중 마르게리타 피자가 있다. 전형적인 나폴리 피자 중 하나로 특별한 토핑이 없이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바질만을 사용하는 피자이다. 그런데도 이 피자는 아주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토마토의 깊은 감칠맛이다. 다른 토핑이 없어 토마토의 풍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피자는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피자로도 알려져 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한 사보이아 가의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를 대접하기 위해 요리사 돈 라파엘 에스폰트가 바질, 모차렐라 치즈 밑 토마토를 이용하여 초록색, 흰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된 이탈리아의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마르게리타 왕비가 이 피자를 매우 좋아하여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마르게리타 피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토마토는 과일과 채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맛의 관점에서도 좀 독특하다. 완숙 토마토는 감칠맛이 나는 글루타민산을 토마토 전체 무게의 0.3%까지 가지고 있으며 황화물의 향기 물질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들은 일반적인 과일이나 채소에는 별로 없는 물질이며 오히려 고기에 일반적으로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감칠맛’은 다섯 가지 미각 중 가장 늦게 기본 미각으로 인정된 맛으로 고기의 풍미와 같은 맛을 말한다. 감칠맛을 내는 물질은 글루타민산, 이노신산, 그리고 구아닐산 등 세 가지가 알려져 있다. 글루타민산은 MSG로 알려진 인공조미료 글루탐산(일)나트륨(Monosodium Glutamate, MSG)과 같은 성분의 물질로 식물 혹은 동물 단백질 중에 들어있는 아미노산이다.


맛있는 찌개를 끓이기 위해서는 감칠맛 나는 국물이 중요하다. 국물을 낼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식재료는 다시마와 표고버섯 그리고 멸치다. 다시마에는 글루타민산이 많이 들어있다. 표고버섯에는 감칠맛을 내는 또 다른 물질 구아닐산이 많다. 또한 멸치에는 이노신산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은 서로 결합했을 때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마술을 부린다. 즉 다시마의 글루타민산과 멸치나 가다랑어포의 이노신산이 만나면 다시마만 넣은 국물보다 감칠맛은 8배로 증가한다. 더욱이 표고버섯의 구아닐산과 글루타민산이 합쳐지면 국물의 감칠맛은 30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 혀에서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인 T1R1에서 글루타민산과 다른 두 감칠맛 물질이 작용하는 위치가 다른데, 글루타민산 이외의 다른 감칠맛 물질이 함께 작용하게 되면 수용체의 구조가 변하게 되고 강한 감칠맛 신호가 지속적으로 뇌로 전달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는 어떤 과일이나 야채보다 월등히 많은 글루타민산이 들어 있어 고기와 함께 요리하면 감칠맛을 높여주게 된다. 그런데 토마토의 감칠맛은 숙성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익지 않은 토마토에 비해 완숙 토마토에는 글루타민산의 농도가 20배 가까이 많다. 또한 딱딱한 과육보다 씨가 있는 내부에 글루타민산이 4배 이상 많이 들어 있다.



냉장 보관 vs 실온 보관, 이것이 문제로다

토마토의 풍미는 혀로 느끼는 맛과 함께 코로 느끼는 향이 조합되어 느껴지는 맛을 의미한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해리 클리(Harry Klee)교수 팀은 연구를 통해 토마토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향 물질을 찾아내었다.


연구팀은 170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풍미를 지닌 토마토를 시식하게 한 후 맛의 선호도를 조사해서 어떤 맛의 토마토를 가장 선호하는지를 알아내었다. 이 이전의 다른 연구들에 의하면 토마토의 선호도는 토마토의 당도와 산도의 균형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2012년에 발표된 클리 교수의 연구에서도 실험 참가자들은 대체로 당도가 높은 토마토의 선호도가 높았지만 당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향을 내는 휘발성 화학물질도 풍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토마토에는 400여 가지 이상의 휘발성 물질이 존재하는데 그중 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16 가지 정도라고 한다.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휘발성 물질은 C6라는 물질인데 실제로 토마토의 풍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C6가 부족하도록 한 토마토와 정상적인 토마토를 비교한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두 가지가 맛이 조금 다르다는 것은 인식했지만 맛의 선호도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C6 화합물에 비해 소량이 들어있는 게라니알(geranial)이라는 물질은 토마토의 풍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 물질이 많이 포함된 토마토의 맛을 선호하였으며 적게 들어있는 토마토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게라니알은 시트랄(citral) 유기화합물의 일종으로 레몬밤, 라임, 레몬 및 오렌지 등의 기름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며 레몬향이 난다.


뒤뜰에서 재배된 재래종 토마토에 비해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먹음직한 토마토를 비교해보면 상업적으로 재배된 토마토에는 게라니알을 포함한 향을 느끼게 하는 휘발성 화합물이 적게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상업적인 육종 과정에서 향 물질이 풍부한 품종보다 상품성에 영향을 주는 외관이 좋고 큰 품종을 선호하여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사 오면 많은 사람들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둔다. 하지만 맛있는 토마토를 먹기 위해서는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풍미에 중요한 향 물질 때문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4 oC에 보관한 토마토에서는 휘발성 물질이 급감하게 된다. 이 온도로 30일을 보관하면 향과 연관되어 있는 휘발성 물질이 66%나 감소하였다. 반대로 20 oC에 보관한 토마토에는 휘발성 물질이 증가하였다. 이는 토마토의 휘발성 물질을 만드는 효소가 냉장 온도에서는 작용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토마토를 냉장 보관했더라도 일주일 정도까지는 실온에 꺼내 놓으면 24시간 뒤에는 효소 작용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지만, 그 이상 보관한 토마토는 정상 회복이 어려웠다. 특히 덜 익은 토마토의 경우 실온에서는 계속 숙성이 되면서 향 물질이 증가하지만 냉장 보관한 경우에는 향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토마토의 풍미를 맛보기 어려워진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토마토

토마토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A, C, B2 등과 함께 엽산과 크롬도 풍부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마토에는 리코펜과 베타-카로틴 등 카로티노이드와 같은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 식물 영양소)도 풍부하다. 이러한 식물 영양소들은 면역력 강화와 만성질환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는 칼륨도 풍부하다. 중간 크기의 토마토 하나에는 300 mg의 칼륨이 들어있으며, 토마토 주스 한 컵에는 534 mg, 토마토소스 반 컵에는 454 mg의 칼륨이 들어있다. 칼륨은 심장 건강과 정상적인 신경 및 근육 기능에 필요한 영양소다. 참고로 우리나라 성인 기준 칼륨 하루 권장량은 4,700 ㎎이다.


열을 가해 토마토를 조리하면 식물 세포벽을 무너뜨려 토마토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의 흡수를 도와준다. 이 물질은 항암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 관한 재미있는 숫자들

토마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2018년 통계에 의하면 멕시코가 180 만 톤을 수출하여 세계 최고 토마토 수출국이었다. 그다음은 네덜란드(110 만 톤), 스페인(79만 7천 톤) 등이었다. 2018년 세계 토마토 총수출을 돈으로 환산하면 97억 달러(약 11조 원)였다. 그러면 토마토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어디일까? 2018년 전 세계 수입량의 27%인 190만 톤을 수입한 미국이었다. 그 뒤를 잇는 나라는 독일(72만 9천 톤), 러시아(57만 8천 톤), 프랑스(49만 3천 톤) 등이었다.


그렇다면 국민 1인당 1년에 소비하는 토마토의 양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터키다. UN 식량농업기구의 2012-2013년 자료에 의하면 터키는 1년에 1인당 98.62 kg의 토마토를 소비했다. 다음은 이집트(90.96 kg)와 그리스(85.78 kg)가 뒤를 이었다. 토마토를 유럽과 아시아에 전하고, 매년 거대한 토마토 축제를 여는 스페인이나, 파스타, 피자 등 토마토 요리가 발달한 이탈리아는 10위권 밖에 있었다.


토마토에 관한 재미있는 기네스북 세계 기록도 있다. 토마토 한 그루에서 일 년간 수확한 토마토 개수의 기록은 무려 32,194개였다고 한다.


과일과 채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토마토는 품종 또한 다양하다. 토마토는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10,000 종이 넘는 품종이 있다고 한다. 더욱이 과일과 채소에서는 보기 힘든 감칠맛을 듬뿍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칼로리는 낮으면서도 우리 몸에 좋은 영양 성분이 많아 단순히 샐러드의 색을 곱게 내기 위한 장식용 식재료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의 최고의 식재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마토 향과 감칠맛이 깊이 느껴지는 갓 구워낸 마르게리타 피자 한 조각이 생각난다.




* 이 글은 <계량과 측정> 잡지 2020 AUTUMN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는 Pixaba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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