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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an 23. 2021

박용기의 단위이야기-1초 동안


이른 아침에 맞추어 둔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스르르 다시 잠이 든다.
잠시 뒤 다시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은 서울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럴 때는 1분 1초가 아쉽다.

서둘러 차를 몰고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에 도달한다.
하지만 교차로에 들어서기 전 신호등은 막 노란 불에서 빨간 불이 되고 만다.
교차로 앞에 멈추어 초조하게 초록 신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골목을 돌아 나올 때 조금 지체하지만 않았어도 신호등을 건널 수 있었을 텐데…
1초의 지체는 2분의 지연으로 이어지고 기차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에 의해 이끌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고,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하며,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미팅을 한 후 퇴근을 한다. 밤이 되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대체로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며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사이에 일 년이 지나고 또 나이가 들어가게 된다.

시간은 볼 수 없지만 시계를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초침이 움직이고 있는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째깍째깍째깍.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이 시간을 재는 기본 단위는 무엇일까? 바로 ‘초’다. 영어로는 ‘second’라고 한다. 그런데 왜 ‘두 번째’라는 의미의 second가 시간의 기본 단위인 초가 되었을까?

고대 로마 사람들은 시간을 ‘호라(hora)’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한 시간을 잘게 나누어 지금의 1 분에 해당하는 시간을 ‘prima pars minuta (첫 번째로 나누어진 조각)’이라 불렀고, 지금의 1 초에 해당하는 시간을 ‘secunda pars minuta (두 번째로 나누어진 조각)’이라 불렀다. 이를 줄여 ‘분’은 ‘minuta’, ‘초’는 ‘secunda’로 불렀으며 현대 영어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minute(분)’과 ‘second(초)’가 되었다.


그렇다면 1초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일상생활에서 1초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시간일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엄청난 시간일 수도 있다. 앞에서 잠시 생각해 본 것처럼 1초의 지연은 2분의 신호대기라는 시간으로 연장되고 이 시간은 때로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이 시간 때문에 수능시험을 못 보게 되어 1년의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고, 중요한 입사 면접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1초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1초 동안 우주에서는 4,000 개의 새 별이 탄생하고 30 개의 별이 폭발한다. 16,000,000 리터의 물이 지구 상에서 증발하고, 태양에서는 6천만 톤의 수소가 탄다. 그리고 지구는 우주를 30 km나 여행을 한다. 빛은 299,792,458 m를 달려 지구를 7바퀴 반 돌게 되며, 세슘 원자가 가장 낮은 에너지 레벨에 있는 두 미세 준위 사이에서 변화하면서 발생하는 복사선은 9,192,631,770번 진동한다. 이 진동수는 아주 안정적이고 정확해서 국제적인 1초의 정의가 바로 이 복사선이 이 만큼 진동하는 시간으로 정의되었다. 또한 빛이 299,792,458 분의 1 초 동안 달리는 길이를 1 m로 정의하였다.

1초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 더 찾아보기로 한다. 1초 동안 지구 상에서는 4.3명의 어린아이가 태어나고, 1.8 명이 세상을 떠난다. 240여만 번의 이메일이 발송되고, 300 여만 번의 구글 찾기가 시도되며, 페이스북에서는 5만 4천여 번의 ‘좋아요’가 표시된다. 지구 상에는 100번의 벼락이 떨어지며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는 3,160 톤의 물이 쏟아진다. 이 물의 양이라면 길이 50 m, 폭 25 m, 깊이 2 m인 올림픽 수영경기장을 0.8초 만에 가득 채울 수 있다. 육상 100 m 달리기 세계기록을 가진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선수는 10.4 m를, 이상화 선수는 빙판을 13.7 m를 달릴 수 있으며, 가장 빠른 육상 동물인 치타는 33 m를 내달리고, 가장 빠른 새인 군함조는 110 m를 날아가며 우리가 탄 제트 여객기는 270 m를 날아간다. 그사이 달팽이는 1.3 cm를 이동한다.

또한 벌은 270번의 날갯짓을 하고 전 세계 사람들의 심장은 83억 번 이상 뛴다. 세계적 갑부인 빌 게이츠는 250 달러를 벌고, 하루에 8 시간 근무하는 연봉 5천만 원의 근로자들은 근무시간만 계산할 때 7.2원을 번다. 세계적으로 1,771,520 달러의 군사비를 사용하고, 놀랍게도 미국 사람들은 자선 사업에 13,000 달러의 돈을 기부한다.




시간은 어쩌면 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측정 단위일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해가 지는 현상이나, 한 달을 주기로 달의 모양이 변해가는 것, 그리고 일 년을 주기로 계절이 반복되는 현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간의 단위들은 정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의 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해의 움직임을 따라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해시계를 만들었으며, 밤에는 별자리의 변화를 통해 그 시간을 짐작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보다 정확한 시간 측정을 하려 하였으며 이는 시계의 발전으로 이어져왔다. 그리고 정확한 측정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시간의 기준이었다.

처음에는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오랜 전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하였던 관습대로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이를 잘게 쪼개어 시간과 분 그리고 초의 길이를 정했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 주기가 정밀한 측정 기준으로 사용하기에는 생각보다 일정하지 않아 세슘 원자로부터 나오는 복사선의 진동수를 세는 방법으로 기준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과거에 사용하였던 1초의 길이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인류가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 중 주파수의 측정이 가장 정밀한 것은 어쩌면 인류의 시간에 대한 오랜 측정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기본 단위는 시간의 ‘초(s)’와 길이의 ‘미터(m)’를 포함하여 7가지다. 그중 질량(kg), 전류(A), 물질량(mol), 그리고 온도(K)의 정의가 2019년 5월 20일부터 새롭게 바뀌었다. 1초의 길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시간의 정의가 변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새로운 정의도 과거에 사용해왔던 1 kg, 1 A, 1 mol 등의 크기나 값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보다 변하지 않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물리상수값을 기준으로 새롭게 바꿨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개념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기본 단위의 개념도 오랜 시간 후에도 변하지 않고 우리의 후손들이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과학자들의 바람이 담겨있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낮과 밤의 길이는 변하지만 늘 1초의 길이는 변하지 않고 흘러간다. 우주와 지구촌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1초 동안이 쌓여 만드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내면 좋을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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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공식블로그

  https://m.blog.naver.com/krisspr/2216650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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