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Sep 25. 2020

9월의 나비-5

9월의 나비-5/ 며느리밑씻개와 노랑나비


*

얼마 전부터 동네 풀밭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샛노란 노랑나비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외손녀는

노랑나비를 잡아 우리 집 발코니에 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말립니다.


훨훨 하늘을 날다가

작은 들꽃 카페에 들러

달콤한 꿀차를 즐기는

나비의 자유로운 삶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밑씨개에 앉아

작은 꽃 속에서 꿀을 먹는 이 나비는

어디에서 날개를 조금 찢긴 모양입니다.


그래도 잘 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조금은 안쓰러워 보입니다.


작은 꽃을 부여잡고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엽고 앙증맞습니다.


9월의 풀밭에는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있어

참 아름답습니다.  



*


남방노랑나비/ 김경숙


*

나비를 열듯 창문을 열었다.


서랍장 틈에서 갓 부화한 남방노랑나비 한 마리 손가락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창문 밖으로 옮겼다. 무거운 등짐을 진 것도 아닌데 무쇠 신발을 신은 것도 아닌데 먼 길을 가는 것 더욱 아닌데 발가락 바르르 떨리게 하는 날개 한 벌 무게가 천만근이다.


날아다니는 것들은 제 무게를 온전히 책임지는 것들.


입술 한 벌 처음 받을 때 떨리던,

몸속에 열꽃들 일제히 피어나던 아찔한 연애 무게처럼

손가락 위에 앉은 봄의 발가락은 간지럽기만 하다.


나비를 옮기는 일이

천만근 무게를 옮기는 역사(役事)

혹은 역사(力士)다.


나비는 햇살 한 장 위에 앉아 제 날개에 묻은 천만근을 비비고 털며 말리고 있다.


사과꽃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숨 막히게 하던 입술 한 벌은 아직도 우화(羽化) 중일까.


나비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내 입술 한 벌도 언제 날아갔는지 없다.


*


#나비 #9월 #노랑나비 #며느리밑씻개 #동네풀밭



매거진의 이전글 9월의 나비-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