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훤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 그 하늘을 어쩌지 못하고 지금 이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神과 神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 그런 어느날은 한 끼니쯤은 굶어라도 보자) 그리고 또한, 멀리서 어머니가 오시듯 살구꽃은 피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어머니에, 하늘에 우리를 꿰매 감친 굵은 실밥, 자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