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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02.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5

싸리꽃

박용기의 사진공감 2, 나를 붙잡는 순간들-5

아파트 화단에 낮게 핀 분홍꽃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주차장 바로 옆 구석이라

보통 때 눈도 주지 않는 자리에.


그런데 이 아이가 나를 불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낮추고 들여다보니

붉은 싸리 꽃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려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지만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씨름을 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아주지 않아도

나에게는 소중한

붉은 싸리 꽃을

그렇게 사진에 담았습니다.


세상에는 작고 사소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싸리 꽃/ 김 명 중



여름 산길은

가슴에 꽃을 달고

불을 밝힌다.


산하를 물들이는 분홍빛 함성

논두렁, 밭두렁 산기슭에 묻어둔 기억들


바람이 초록으로 물들면

아버지는 뒷산에 올라

흐드러진 뒷산의 허리를 한 바지게 담아오셨다


싸리나무 꽃이 지고

가을이 오면

깔깔거리던 아이들은 회초리를 피해 달아나고

마당 앞 감나무가 제 종아리를 내밀었다


나는 청맹과니였다

으름장을 놓던 싸리나무 회초리에

돌아앉은 어머니의 눈물이 묻어있던

잠 못 드는 밤인 것을 몰랐다


종아리에 남은 빗줄기 같은 핏자국도

한 계절을 살고나면

붉은 꽃으로 핀 다


싸리나무는 사랑으로 자란다는 것을

수십 번의 여름이 오고

자식을 낳았던 한 지아비가 되면서 알았다

오늘

여름 산길에서 나도 한 묶음의 싸리 꽃을 가슴에 달아본다.


 ** 청맹과니(靑盲--) :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



#나를_붙잡는_순간들 #싸리꽃 #동네 #바람 #작고_사소하지만_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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