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Oct 01.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4

흰여뀌

박용기의 사진공감 2, 나를 붙잡는 순간들-4

*

공터 한쪽에는

제법 큰 키로 자라

하얗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흰여뀌도 있었습니다.

여뀌 중 가장 귀공자 같은 모습의 들꽃입니다.


자세히 보니

작은 꽃들이 벌어지는 모양이 제 각각이네요.

맨 아래에 있는 꽃송이는 아랫부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위에 있는 꽃송이들을 보면 오히려 맨 끝 쪽에서 피고  

또 중간에도 피어있어요.


까치수염 같은 꽃은 밑부분부터 피어 끝으로 올라가는데

이 아이는 참 자유분방합니다.

아마 나름의 규칙은 있겠지요.

그래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이 피고 지면서 세월이 흐르고

벌써 10월이 문을 엽니다.


꽃이  지는 일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연습을 하는 걸까요?

인생의 10월에

나도 이렇게 아름답게 무언가를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10월/ 오세영


*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나를_붙잡는_순간들 #흰여뀌 #공터 #10월 #잃어_가는_연습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붙잡는 순간들-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