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의 사진공감 2, 나를 붙잡는 순간들-4*
공터 한쪽에는
제법 큰 키로 자라
하얗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흰여뀌도 있었습니다.
여뀌 중 가장 귀공자 같은 모습의 들꽃입니다.
자세히 보니
작은 꽃들이 벌어지는 모양이 제 각각이네요.
맨 아래에 있는 꽃송이는 아랫부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위에 있는 꽃송이들을 보면 오히려 맨 끝 쪽에서 피고
또 중간에도 피어있어요.
까치수염 같은 꽃은 밑부분부터 피어 끝으로 올라가는데
이 아이는 참 자유분방합니다.
아마 나름의 규칙은 있겠지요.
그래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꽃이 피고 지면서 세월이 흐르고
벌써 10월이 문을 엽니다.
꽃이 지는 일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연습을 하는 걸까요?
인생의 10월에
나도 이렇게 아름답게 무언가를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10월/ 오세영
*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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