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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03.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6

박용기의 사진공감 2, 나를 붙잡는 순간들-6

가끔씩 찾아가는 무주의 한 카페

테라스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청귤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피었는지 카페 뒤쪽 낮은 축대에는

구절초가 피어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건물에 가려져 반 응달에 핀

구절초 하나가 나를 불렀습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무식한 놈’이라 했던

안도현 시인의

‘구절초의 북쪽’이라는 시처럼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구절초가 통째로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구절초의 북쪽/ 안도현


흔들리는 몇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이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나를_붙잡는_순간들 #구절초 #무 #바람 #작고_사소하지만_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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