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잠풀
일하던 연구소 한 곳에
여름이면 석잠풀이
바른 자세로 꽃대를 올리고
층층이 꽃들을 피워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늘 이 아이를 만나
카메라에 담는 일이 기다려지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아쉽게도 석잠풀을 만나지 못한 채 여름이 갔습니다.
이 여름
반갑게도 그 집 정원에 핀
석잠풀을 만났습니다.
여름 정원 한편에
조용히 피어 있는 석잠풀은
여전히 바른 자세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석잠풀은 꿀풀과의 식물입니다.
학명은 Stachys riederi
꽃말은 좀 엉뚱합니다.
“설원의 여인”
겨울왕국의 엘사인가요?
석잠풀/ 김승기
세 번의 잠을 자야만
누에가 고치를 만들 수 있듯이
일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꽃 피우는
세 번의 기회는 온다는데
돌아보면
죽을 고비만 세 번을 넘기면서
꽃 피울 행운은 있었던가
갑작스런 사고
겨우 목숨 건진 전신마비
생의 마지막 고비 넘긴 것인가
가을은 깊어 가는데
언제쯤 온전히 일어서서
찬란하게 불꽃 한 번 밝힐 수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기회 남아 있을까
붙잡을 수는 있을까
이미 지나버린 것 아닐까
네모지게 꼿꼿이 허리 세우고
마디마디 층층으로 꽃 피우는 그대
멍하니 얼굴 바라보고 있지만,
검게 타는 가슴엔
툭 툭
낙엽이 떨어진다
#여름정원 #석잠풀 #하기동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