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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ul 19. 2021

Poetic summer-17

범부채

Poetic summer-17, 범부채


7월은 꽃보다 비가 많은 달입니다.

그날도 비가 내렸지만 

가족과 함께 적상산 기슭의 

그 카페에 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 가족은 갑자기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외손녀와 딸은 

강아지 '감자'를 향해


그리고 나는

막 피어나는 범부채를 향해

달려갔으니까요.


홀린 듯 카메라를 들고 

비에 젖은 꽃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못마땅하게 툭 한마디를 던지고

카페로 올라갔습니다.


'못 말 려!'


나도 그냥 '젖은 채'로 이 꽃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맑은 빗방울이 맺힌 꽃들이

나를 보며 밝게 웃는 모습이

내 마음속을 

적셔 말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 안상학


범부채는 한 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간다


봄내 다리를 키우고

여름내 꽃을 베어 물고

가으내 씨를 여물게 한다

겨울이면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

겨우내

숱한 칼바람에 걸음을 익히고

씨방을 열어 꽃씨를 얼린다

때로 눈을 뒤집어쓴 채 까만 눈망울들 굳세게 한다


그리하여 입춘 지나 우수 어디쯤

비에 젖으며 바람에 일렁이며

발목에 힘 빼고 몸 풀어

쓰러진다 온몸으로 쓰러진다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를 풀고 씨를 묻는다


발 달린 짐승이라 해서 인간이라 해서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범부채의 일생, 꼭 그럴 것이다


범부채는 한 해에 딱 한 걸음씩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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