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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Mar 13. 2022

따뜻함과 행복을 전하는 색, 오렌지색

빈센트 반 고흐의 잘 알려진 그림 중에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이라는 그림이 있다.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남프랑스 생 레미 요양원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그림으로, 코발트블루의 밤하늘에 소용돌이로 묘사된 별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달과 작은 별들을 고흐는 어떤 색으로 칠했는지 기억하는가? 


고갱과 함께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림을 그렸던 고흐에게 오렌지색과 노란색은 프로방스의 맑고 밝은 햇살이었다. 특히 고갱은 오렌지색을 많이 사용하여 사람의 피부와 옷을 표현했으며, 고흐도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 그는 노란색과 붉은색의 흙 오커(ochre)를 섞어 자신만의 오렌지색을 만들었고 그의 별이 빛나는 밤 속의 달과 별을 이 색으로 칠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출처: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Vincent-van-Gogh)


오렌지색 혹은 주황색

오렌지색은 우리말로는 주황색이라 부른다. 그런데 주황(朱黃)은 붉은색과 노란색을 혼합한 색이라는 뜻이다. 이 색은 무지개에서 빨강과 노랑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가시광선에서 585 ~ 620 nm 정도의 파장을 가지는 색이다. 유럽에서도 15세기 후반까지 특별한 이름이 없이 yellow-red로 불렸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15세기 말에 아시아로부터 오렌지를 처음 유럽으로 가져간 후 이 색은 이 과일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오렌지 나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나랑가(naranga)’가 페르시아어 ‘나랑’으로 그리고 아랍어 ‘나란지’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어로는 나랑하(naranja) 등이 되고 후에 영어의 오렌지가 되었다. 


TV나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빛의 합성으로 색이 재현되는 RGB(red-green-blue) 색 모델이 사용되는데, 오렌지색은 파란빛을 완전히 끈 상태에서 강한 붉은빛과 낮은 강도의 녹색 빛을 섞어 만든다. 하지만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엔 붉은색과 노란색을 다양한 비율로 섞어 조금씩 색조가 다른 오렌지색을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오렌지색은 오렌지색을 내는 염료를 사용할 때에 비해 선명하지 않아 오렌지색을 내는 염료나 물감이 쓰이기도 한다. 


고대부터 사용하던 오렌지색 물감으로는 연단 혹은 광명단(minium)과 마시콧(massicot, 일산화 납)이 있는데, 산화납을 가열하여 만들었다. 이 두 물감이 모두 유독하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크롬 오렌지와 카드뮴 오렌지 물감으로 대체되었다. 그 후 퀴나크리돈(quinacridone)이 1935년에 합성되었고, 1986년에는 우수한 내후성, 내광성, 뛰어난 색 강도와 채도를 가진 오렌지색 물감 디케토-피롤로 피롤 오렌지(diketo-pyrrolo pyrolle, DPP)가 개발되어 페인트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섬유 등의 색을 내는 데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오렌지색의 심리학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오렌지색은 오락, 인습에 얽매이지 않음, 외향적, 따뜻함, 불, 에너지, 활동, 위험, 맛과 향 등과 연관이 깊은 색으로 인식된다. 오렌지색은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색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죄수복과 연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왕족이나 영성과 관련이 있는 귀한 색이기도 하다. 


2018년의 연구에 의하면, 오렌지색은 흥분시키는 색으로 에너지 레벨을 높여주어 장난기와 활기찬 느낌을 주지만 이 때문에 공부와 같은 과제 수행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오렌지색은 강하게 자극하지만 친근감이 있는 색이다.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어 주목받는 색상으로 교통 표지판이나 광고 등에 많이 사용된다. 파장이 긴 오렌지색이나 빨간색은 높은 수준의 각성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오렌지색은 밝은 저녁노을과, 오렌지나 감귤 같은 과일과 같은 색으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신선한 맛과 같은 행복한 느낌을 준다. 연구에 의하면 오렌지색을 소비자 마케팅이나 상품에 사용하면 장난스럽고 친근한 색상으로 인식되며, 물건 구매자들은 더 저렴한 상품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음료회사 환타, 세계적 음향시스템 회사 JBL,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MasterCard, 맥도널드 등과 같이 오렌지색을 로고에 사용하는 기업들도 많다. 또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렌지색을 좋아해 모든 스포츠 국가 대표의 유니폼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연에서 만나는 오렌지색

저녁노을은 노란색에서 붉은색 그리고 이 둘이 합쳐진 밝은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을 띤다. 백색광의 태양 빛이 대기 층을 지나 우리 눈에 오는 동안 빛은 공기 분자나 공기 중에 있는 입자들에 의해 산란이 일어나게 된다. 파란빛과 같이 파장이 짧은 빛일수록 산란이 많이 일어나 우리 눈에 도달하는 태양의 빛 속에는 파란빛의 강도가 약해지게 된다. 석양의 경우 태양의 고도가 낮아 태양빛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대기층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어 파란색이나 초록색과 같은 짧은 파장의 빛 성분이 거의 다 산란되어 흩어진다. 그 결과 노랗고 붉은 계열의 빛만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저녁노을 외에도 오렌지감귤과 같은 과일, 당근, 늙은 호박과 같은 야채, 그리고 가을 단풍 등 주변에는 오렌지색이 많다. 이 것들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물질은 카로틴(carotenes)으로 광합성과 연관된 색소이다. 이 물질도 엽록소처럼 태양광의 일부를 흡수하여 식물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만든다. 카로틴이라는 이름은 이 물질이 많이 들어 있는 당근(carrot)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18세기 이전까지 당근은 오렌지색이 아니라 아시아지역에서는 보라색, 유럽에서는 흰색이나 붉은색이었다. 당근이 오렌지색을 가지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서 품종개량을 통해 오렌지색 당근이 만들어진 이후다.  


옛날 온도계가 사용되지 않을 때 철로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들던 대장간에서는 쇠가 달궈진 색으로 온도를 가늠하였다. 검은색의 철이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어두운 붉은색이 나타나면 550 °C 정도가 되며, 밝은 빨간색을 거쳐 오렌지색에 도달하면 대략 1,000 °C가 된다. 이 온도가 되면 강하던 철도 유연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게 되며, 실제로 풀무질을 통해 유용한 연장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된다. 따뜻함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유연성을 지닌 오렌지색이 우리에게 행복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글은 세아그룹의 사보 <세아 가족> 2022년 1-2월호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외의 그림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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