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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15.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16

닭의장풀

나를 붙잡는 순간들-16, 닭의장풀


여름부터 풀밭에는

파란 작은 불이 켜지곤 합니다.


아침이면 켜진 불빛은 오후면 꺼지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또 다른 불들이 켜집니다.


흔한 잡초지만

나의 시선을 늘 사로잡는 꽃

닭의장풀입니다.


닭장 옆에 많이 핀다고,

혹은 닭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달개비라는 닭 느낌이 덜 나는 이름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하루만 피는 꽃이라고

common dayflower.


시성 두보 (杜甫)이 꽃을 

'꽃피는 대나무'라고 해서

수반에 꽂아서 가까이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병에 꽂아두면

금방 꽃이 시들고 잘 피질 않더군요.


들꽃은 풀밭에서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풀밭에 파란 불을 켜고

주어진 하루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꽃 피우는

아름다운 달개비가 나를 붙잡는 초가을입니다.




달개비꽃/ 이해인



반딧불처럼 너무 빨리 지나가

잡을 수 없던 나의 시어들이

지금은 이슬을 달고

수도 없이 피어 있네


남빛 꽃잎의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리라고?


잘라내도 마디마디

다시 돋는 잎새를 꺾어

시를 쓰라고?


풀숲에 들어앉아

잡초로 불려도 거리낌이 없는

그토록 고운 당당함이여


오래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반가운

소꿉동무의 웃음으로

물결치는 꽃


하늘 담긴 동심의 목소리로

시드는 듯 다시 피는 희망으로

내게도 문득

남빛 끝동을 달아 주는

어여쁜 달개비꽃




#나를_붙잡는_순간들 #닭의장풀 #달개비 #동네풀밭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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