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20

튤립

by 박용기
121_0045-s-At spring-20.jpg 이 봄에-20, 튤립


이 봄엔 아직도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수영장 주차장 입구에

막 피어나는 복숭아꽃도 사진에 담고,


지금은 새 건물을 짓고 있는

예전의 '띠아모'라는 카페 자리를 돌아

튤립과 수선화를 예쁘게 가꾸고 있는

'그대는 꽃'이라는 꽃집 앞으로 갑니다.


봄비가 살짝 스치고 간 아침나절이라

꽃송이엔 물기가 배어있습니다.


일반적이 않은 자주색 튤립 몇 송이가

노란 수선화를 배경으로

묵언 수행이라도 하듯

입을 다물고 서 있습니다.


묵상 중인 튤립 그 너머로

봄이 피어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로 다르지 않은 나의 나날들도

물기 먹은 꽃잎처럼

생기를 찾는 이 봄입니다.





튤립에 물어보라/ 송재학



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 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 물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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