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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Dec 26. 2019

계란 동동 쌍화차

넓은 실내에 밝은 형광등 불빛아래에 짙은 화장을 하고 한 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줌마가 카운터에 앉아 있다. 

네명 혹은 여섯 명 정도 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비닐 재질의 약간 붉은 빛 혹은  분홍 빛이 나는 소파에 양복을 입고 앉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신문을 본다든지 잡담을 나누고 있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인지 썰렁하다. 

들어 가는 입구 카운터의 마담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진한 화장을 하고 몸에 붙은 면 티를 입어 앞가슴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이는 앵두처럼 시뻘건 입술을 칠한 여자가 반갑게 맞이 한다. 

아버지와 함께 찾은 다방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 아직 아이라고 불리는 시절에 오전에 학교를 마치고 오면 짧은 숙제를 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골목은 시끌벅적 해지고 학교를 마치고 온 상급학년 형과 누나들이 골목으로 나올  시간이 되어야 시끌벅적 신이 난다. 

그 시간까지는 어머니의 월남 치마를 쥐고 보채는 게 일이었다. 

마당에 커다란 철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심심하던 차에 얼른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벌써 집에서 일하는 식모 누나가 문을 열어 주고 이제 고등학생 또래의 오촌 당숙이 마당에 들어 선다. 

끈이 느슨한 낡고 헤어진 천으로 만든 등산화를 신고 청색의 해군 작업복 바지를 입고 소매긴 내복 차림으로 나타난다. 코에는 검은 기름 때가 묻어 있다. 아침에 분명 깨끗한 얼굴과 옷을 입고 나갔는데 지금 들어 오는 모습은 길에서 삼태기를 둘러 맨 넝마꾼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희죽희죽 웃으며 들어 온다. 어머니도 어쩐 일로 왔냐고 묻는다. 집 안 마당 한 켠에 만들어 놓은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어 싣고 오후에 납품을 가야 한다고 말하며 창고로 향한다. 

당연히 심심해서 주리를 틀고 있던 나는 아주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고무신을 질질 끌며 당숙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 갔다.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어  요즘에는 보기 드문 짐자전거에 싣는다. 지금처럼 오토바이가 흔한 시절도 아니고 지급처럼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몰고 다니는 트럭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리 무겁지 않거나 왠만한 부피의 짐은 모두  짐자전거에 싣고 다닌다. 

굵고 시커먼 고무줄로 자전거에 실린 무거워 보이는 물체를 단단히 동여 맨다. 오촌 당숙은 늘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입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심심해서 나와 구경하는 나를 보고 벙긋번긋 웃어준다. 이제 가고 나면 나는 별다른 구경거리 없이 심심하게 집 안을 뱅뱅 돌고 있어야 한다.

짐 정리를 끝내고 당숙은 출발하려고 한다. 아쉬움을 달래며 방으로 들어 오는데 전화를 받고 계시던 어머니가 나에게  문 밖에서 막 출발하려는 당숙을 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눈썹이 휘날리듯 달려나가 당속에게 말을 전한다. 당숙은 다시 마당에 들어 와 마루에 걸터 앉는다. 전화 통화가 끝이 났는지 마루를 걸어 나오는 어머니는 당숙과 나를 번갈아 쳐다 보면서

"아버지가 사무실로 나오라 고 하신다. 아재 자전거에 타고 거기서 놀다가 아버지 모시고 들어 오렴!"

어머니의 이 말씀에 나는 신이 났다. 아침에 보고 저녁 때까지 보지 못할 것 같은 아버지를 보러 가는 일도 신나지만 사실 아버지의 사무실 근처에 장난감 파는 가게가 있다. 그곳에 가서 구경하는 일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걷는 듯 황홀했다.

 아재는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막내 동생 같은 어린 조카를 태울 자리를 서둘러 마련 한다. 바로 자전거 손잡이와 의자 사이에 자전거 대에 박스로 엉덩이 아프지만 않게 자리를 만든다. 얼굴이 한껏 들 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손을 흔든다. 


차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드문드문 다니는 차였기에 자전거 타고 가는 길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당숙은 이리저리 묘기를 부리며 나를 즐겁게 해준다. 

사무실 앞에 자전거는 멈추고 나는 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간다. 겨우 어른 한사람 지나갈 통로에 기름 묻은 금속덩어리와 기계부품, 전선이 어지렵게 주변에 얼려 있다. 비릿한 철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묘한 냄새를 풍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혹시 아버지에게 혼 날까 봐 일일이 인사를 다 하고 다시 미닫이 문을 연다. (아버지는 예절이라든지 전통 풍습에 대해서 유별나신 점이 많았다. )

단발 머리를 한 누나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아버지는 그시절 제건복이라는 누런색 점퍼차림으로 어딘가와 열심히 통화 중이시다. 

나를 보셨지만 손만 드시고 할일을 하신다. 누나는 자기 옆에 있는 작은 철제 쇼파에 앉으라고 한다. 예전에 병원이나 간이역에서나 볼 수 있던 두 사람은 좀 넉넉하고 세사람은 좀 좁다고 느끼는 의자에 나를 안으라고 말한다. 사무실에  

사무실이라 해 봤자 겨우 나무 책상에 누나 앉는 의자와 그시절 영어라는 걸 모르는 아이 눈에 꼬부랑 글씨로 적힌 제품관련 카탈로그가 꽃혀 있는 책장하나로 꽉 찬 사무실이다. 나 빼고 두 사람정도 가 더 들어 오면 발 딜 자리도 없는 작은 사무실이다. 

전화 통화가 끝난 아버지는 그 시대의 아버지처럼 무뚝뚝하게 학교 갔다 왔나? 하는 말뿐이시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내 손만 잡고 창문으로 일하는 분들을 바라 보고 계신다. 

미닫이 문 창으로 사람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다시 좁은 통로로 나가신다. 

어둠과 기름 냄새나는 곳을 지나 아버지와 함께 광복동에 간다. 그리고  그 시절 꽤 유명한 빵집에 들러 그 시절에 먹어 보기 힘든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는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지는 않지만 늘 이렇게 색다른 먹거리를 자주 사주셨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아버지와 함께 향한 곳은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거나 시골 읍이나 면소재지에 드문드문 있던 다방이었다. 

그시절에 다 그렇겠지만 사무실이 지금처럼 멋진 공간은 아니었다. 손님이 오실 때 차 한 잔 마실 공간이 있는 사무실이 아주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다방은 그 시절 차를 마시며 환담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사람들과 일 때문에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다방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진한 화장을 한 냄새가 코를 지르는 일며 다방 레지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아버지와 함께 창가에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버지가 자주 오시는 다방이어서인지 한복 자락을 휘날리며 따라 오는 마담과 레지가 아들이냐고 묻는다. 

뭔 한 눈에 봐도 아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히히히!

짧은 치마를 입은 레지가 맞은 편에 앉는다. 그리고 한 쪽에 앉아 있던 덩치 크고 머리가 파마를 했나 착각할 정도의 덩치 큰 아저씨가 

"행님!"

하며 자리로 향해 걸어 온다. 

가끔 아버지 사무실에 가면 보던 아저씨였다. 

벌떡 일어나 꾸벅 구십도 가까이 허리를 숙이고 인사 한다. 아저씨는 웃으며 나의 정갈하게 빗어 놓은 머리키락을 사정없이 흩으러 놓는다. 

지갑에 꺼내더니 오백원짜리 지폐한 장을 꺼내어 준다. 아버지를 쳐다 본다. 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나는 초록색 빛깔을 오백원을 얼른 받는다. 

레지 아줌마가 꼽슬머리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아버지는 쌍화차를 주문한다. 그 시절 오렌지 색깔을 환타를 다방에서 잔으로 팔았다. 그달콤하고 톡쏘는 음료를 마실 수 있다. 가격이 비쌌지만 꼽슬머리 아저씨가 사주시니 아버지 눈치 보지 않아도 좋았다. 

쌍화차 두 잔과 환타 두 잔이 나왔다. 

쌍화차를 보고 놀랐다. 시커먼 색깔에 한약 냄새가 풍기는 고약한 차였다. 그리고 땅콩이니 잣이니 말린 대추가 동동 더있는 찻잔에 유독 노란 색이 눈에 뛴다. 알고 보니 계란 노른자였다. 으윽!

차 안에 계란 노른자의 모습이 어린 나이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아저씨는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드시기 시작한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이었다. 노른자를 솓가락에 떠서 나에게 먹이시는 것이다. 

아~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조금 전까지 입안의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환타는 온데가데 없고 비린내 나는 노란 달걀이 나의 입 속을 점령하려고 들러 온다. 

아버지 말씀은 아무리 어리다고 듣디 않으면 안 된다. 앞에 앉은 레지 아줌마는 한 술 더 뜬다. 빨깐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아' 소리를 낸다. 입 속에 노란 달걀이 들어 온다. 미끈덕거리는 식감에 얼굴을 찡그린다. 

잠시 뒤 윗 이빨과 아래 잇빨이 본능적으로 상하 운동을 한다. 터지는 순간의 고소한 맛이 미끌거리는 잠깐의 기분 나쁨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도 맛있었다. 

곱슬머리 아저씨입에 가져간 찻잔에서 누런 코 같이 생긴 생달걀이 쏙 빠려 들어간다. 

견과류와 함께 맛있게 드신다. 

레지 아줌마는 카운터에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찢어 내 입술에 묻은 계란과 물기를 닦아 준다. 

아와 계란 동동 뛰운 쌍화 차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도 가끔 아버지가 보내 주시는 자가용 자전거?에 몸을 싣고 점심도 먹고 또 그 다방에 가서 우유도 마시고 환타도 마시고 하면서 다방문화를 익혔다. 

처음에 아버지에게 교태를 부리던 레지 아줌마의 얄밉던 모습도 점점 친근하게 다가 왔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사람들과 이야기 하시는 동안에 아줌마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성냥으로 탑도 만들어 주고 종이 접기도 함께 만들던 기억이 난다. 사실 말이 아줌마였지 그 시절 나이로 봐서는 이십대 중 후반쯤의 젊은 여자였다. 어린 나이에 짙은 화장을 한 모습에 아줌마라고 불렀는지 모른다. 

역시나 쌍화차는 아버지의 테이블의 고정 메뉴였던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 대구의 유명 다방을 찾았다. 대부분 노인들이 앉아 있고 그 시절처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가 카운터를 지키는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켰다. 

지금의 커피 전문점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였고 호탕하게 웃는 곱쓸머리 아저씨의 웃음 생각난다. 그리고 처음에는 미웠던 레지 아줌마의 다정한 모습도 그리워진다. 

아 한약 냄새와 날계란의 비릿한 쌍화차를 시켜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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