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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l 21. 2020

사주 이야기

부족함을 채우려고 애쓰지 말고 넉넉함을 나누자

사주를 봐주는 공부를 한 덕분에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게 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주를 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상하지!

사주를 보러 오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텐데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본다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그러나 나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뭔가를 물어본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물어 볼 말이 없냐며 노트를 닫는 순간에 꼭 이성에 대한 질문을 꼭 한다. 

남편이 있는 사람이도 아내가 있는 사람도 심지어 나이가 육십이 넘어 홀로 사는 노인 조차도 이성이 생기는 지 묻는다.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지금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도 빠듯할텐데요?" 라고 말하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홀로사는 노인은 좀 더 적극적으로 묻기도 하지만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면서 푸념하듯

"아~하 남은 인생 이리 외롭게 살아야 하나?"

속으로 웃음이 난다. 


꽤 오래전 사주를 한참 공부하고 있을 때 작은 에피소드다.

사주 공부한다는 소문이 동창들과 선후배 사이에 퍼졌다. 소문이 나면 반드시 궁금한 사람은 엉덩이가 들썩인다.  대학 때 꽤 친하게 지낸 친구 편에 소문을 들은 대학 후배가 공부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깜찍하고 발랄한 그녀는 동기생은 물론이고 예비역과 한 두 학번 빠른 남학생에게 제법 인기 있던 여학생이었다. 

다만 그녀의 높은 콧대에 여러 사람 상처 받고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꽉 들어 차있던 때라 굳이 시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녀와 내가 그렇게 친했던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나를 아주 싹싹하게 대했다. 작은 암자에 밑에는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전과 막걸리까지 사준다. 자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뭔가 궁금한 게 있어 왔겠지만 공부 중이기도 하고 내가 먼저 묻기도 어쩌면 귀찮을 것 같아 그저 실없는 이야기로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래도 전과 막걸리는 공부라는 사막을 건너다 목마름에 지쳐 걷기 조차 힘든 순간 입술을 적시는 달콤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맛있게 얻어 먹었다. 역시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맛있는 막걸리까지 사주었으니 그녀가 풀어놓을 썰을 들어야 한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그 미모에 아직 결혼도 못했다고 한다. 안한 것이 아니고 못했다는 말이다. 

에둘러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결혼이 급한 모양이다.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되는 결혼 그래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콧대가 셀 때 알아봤다. 좋은 남자 많았을 터인데 고르고 그르다 세월만 낭비한 꼴이지.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사주가 적혀 있는데 사주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띠를 보니 하나는 후배의 사주고 다른 하나는 후배보다 두 살이 많은 사주이니 남자 사주였다. 

후배의 사주는 팔자에 남자가 없어서 좀 부족한 듯하지만 부모 물려주신 재산에 주변 형제가 모두 잘 사니 그리 걱정할 사주는 아니다. 자신의 일평생은 거든할 사주였다. 솔직히 부러웠다. 


여자의 사주에는 자신이 태어난 날의 갑자를 힘들게 하는 갑자가 있어야 한다. 그 갑자를 사주명리학 용어로 '관'이라고 부른다. 여자 사주에 '관'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이 태어난 날의 갑자가 관에 너무 괴롭힘을 당해도 자신의 삶이 힘이 든다. 그렇다고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없다면 그다지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 

후배의 사주에는 태어난 자신의 일주를 힘들게 하는 '관'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재물과 그 재물을 혼자 독식하지 않게 자신과 닮은 오행이 알맞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문제는 일생동안 걱정이 없지만 일을 가지거나 좋은 남자와 시간을 보낼 팔자는 아니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을 후배의 얼굴은 일그러져 갔다. 위로의 말이라고 던진 말이 결혼을 하지 말고 좋은 남자 친구와 오래 지속해서 지내는 것도 하나의 부적과 같은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고를 하라는 말이었는데 갑자기 화를 내더니 자리를 박차고 그대로 가버렸다. 너무 솔직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보다 성이 그다지 개방 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동거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을 거르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었고 그래서 무척 화가 났던 모양이다.  

뒤에 들은 소리는 나보고 아직 공부 중인 돌팔이가 뭐 그리 잘 알겠냐 하는 말이 귀에 들렸지만 그 뒤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뭐 그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으니 막걸리와 전을 먹을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잊고 지냈다. 


사주와 주역을 공부했지만 어쩐 일인지 나에게는 돈과는 인연에 없었다. 

내 사주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차에 그리 욕심 내서 살 것도 아니고 해서 조용한 시골에 와서 세상과 부딪히는 일이 없이 살았다. 

공부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하게 해 준 것은 이 사주 명리학 공부가 나의 마음의 깨우는데 좋은 공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돌팔이 소리를 듣던 말든 그래도 가끔 사람들이 찾아와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니 그래도 고맙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자연을 벗 삼아 공부 같은 공부 같지 않게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친하게 지낸 대학 친구가 근처를 지난다며 산골에 놀러 왔다. 뭐 세상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후배 아무개에 대해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 친구 사실 나를 떠 보려고 온 듯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뭐 사주팔자 잘 타고나 잘 먹고 잘 지내겠지 라고 말을 하니 그 친구는 나에게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말에 기분이 언짢게 된 후배는 그 뒤 몇 군데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녔고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돈을 주고 사주팔자를 고쳤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가질 것 다 가진 그녀는 오직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 돈 십분지 일만 투자해서 나에게 맛있는 술이나 사주지 그랬어!' 

친구는 나에게 묻는다. 팔자 못 고치냐고. 

나의 대답은 고친다고 고치면 세상에 못살고 힘든 삶이 어디 있겠냐고 대답해 주었다. 

후배가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을 해 주겠나 할 말 없는데 봐야 서로 기분만 나쁠 게 뻔한 일이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행복해야 한다고 하지만 각자의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절대 행복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 쥐고 살 수 없다. 

사주를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을 바르게 알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부다. 

道라고 하여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마음공부를 하지만 타고난 사람의 시간 속에 자신의 공부가 숨어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삶은 훨씬 편해진다. 나는 재물을 생각하지 않는다. 없는 것에 너무 몰두하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 쫓아다니던 물질을 마음에서 보내고 나니 훨씬 내 삶이 편안하다. 잠시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 나에게 험한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이제 그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만약 자신에게 부족한 사주의 오행이 있다면 넉넉한 오행으로 대신하면 된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사람이 마음공부는 하는 이유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기르기 위함은 아닐까 한다. 

그러니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없는 것을 쫓지 말고 넉넉한 것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인생을 훨씬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작고 소박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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