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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n 21. 2020

녹두빈대떡과 나박김치

머릿속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듯이 사람의 입도 지난 세월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음식에서 느끼는 추억은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쳐 오기도 하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 듯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에 대한 추억이 가장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때의 그 맛을 늘 쫓아가지만 어머니가 우리에게 느끼게 해 주셨던 손맛은 찾을 길이 없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찾은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 음식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재료인 사랑이 빠져 있기에 아무리 산해진미를 가져다주어도, 아무리 비슷하게 만든다 하여도 그 음식의 맛은 영원히 찾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나도 기억 속에 맴도는 어머니의 음식이 하나 둘은 있다. 

그 기억의 앨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 속에  녹두 빈대떡이 자리하고 있다. 

노란 병아리 같은 색깔의 녹두를 갈아 돼지고기와 숙주나물, 김치를 넣고 만든  녹두 빈대떡은 어머니라는 이름 속에 깊이 아로새겨 있다. 

아무리 빈대떡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 가도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빈대떡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진 구수한 녹두의 맛과 고소한 돼지고기 기름의 풍미가 함께 어우러진 녹두 빈대떡을 구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녹두 빈대떡의 맛을 느끼면서 따라오는 또 하나의 맛이 입가에 맴돈다.

기름진 빈대떡을 먹고 나면 느끼해진  입안의 텁텁함을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바로 그때에 시원한 나박 물김치가 한 그릇이 느끼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헹군다.

찬 바람이 쌀쌀하게 불거나 무더운 여름날의 갈증을 삭일 때 생각이 절로 나는 시원 나박 물김치가 추억 속에 자리하며 지나간 시간 속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나박김치와 녹두 빈대떡의 맛은 이제는 느낄 수 없다. 

벌써 구순에 가까운 연세에 예전 같은 입 맛과 손맛을 지니고 계시지 못한 탓이다. 

못난 아들이 가끔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면, 아들 잘 먹는 음식 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깊은 마음에 빈대떡을 만드시고 나박김치를 담가 놓으시지만 지금 보다 훨씬 젊으셨던 그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맛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그때 그 맛을 느껴보고 싶어 나름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지만 어머니 손 맛을 따라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나 온 시간들의 추억만을 간직할 뿐이다.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 맛을 가슴속에 묻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슬프게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음식의 맛은 재료의 맛이다. 재료의 맛이 좋으면 음식의 맛을 거의 대부분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철 식재료의 맛은 어떠한 양념 맛도, 어떤 한 손맛보다도 맛을 내는 최고의 레시피다.

나박김치도 제철에 나오는 무와 배추로 담그면 제일 맛있다. 그러려면 무와 배추가 나오는 늦가을과 초겨울에  담가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잘 익은 배추의 달달하고 고소한 끝 맛과 아삭 거리는 식감이 입을 즐겁게 한다.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배추즙은 목마른 갈증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수분을 간직하고 있다. 

배추를 수확하다가 잠시 쉬는 틈에 생 배추를 물에 씻어 한 입 베어 물면 시원한 배추 속의 물이 갈증을 가시게 한다.

무 역시 알싸하고 입안에 가득 고이는 달큼한 무즙 맛이 혀와 입안을 짜릿하게 만든다.

저녁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생배추를 뜯어 접시에 담고 잘 익은 된장과 찍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뭐 필요하겠나!

 거기에 무를 채 썰어 멸치로 진한 육수를 끓인 뭇국과 함께 한다면 두 가지 반찬으로도 풍성한 식탁이 된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식탁에 둘러앉아 기족끼리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 나누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추억 너머로 아련히 비친다.  


가을이 깊어 가고 쌀쌀한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 때면 청과시장은 겨울철에 먹을 저장 채소인 김치를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그 속에 나도 어머니를 따라 청과 시장을 간다. 

싱싱하고 맛있는 배추를 고르기 위해 어머니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시지만 매년 배추와 무를 사는 야채 가게에 발길이 멈춘다. 얼굴을 알아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시고 나를 쳐다보는 아주머니의 순박한 미소가 참 예쁘다. 

단골의 좋은 점은 맞보기를 넘치도록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싱싱하게 생긴 배추를 들고 와 속을 뒤지고 노란 알배추를 속 뽑아낸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에게 아주머니가 뽑은 알배추를 건네주신다. 거칠고 투박한 손에 들려 있는 노란 알배추가 내 손으로 건너오고 탱탱하게 보이는 배추 잎을 뜯어 한 입 쓱 베어 문다. 

한입 베어 문 배추는 마치 검푸른 거친 파도가 갯바위에 세차게 부딪치는 듯이 밀려오고  입속에는 시원한 배추즙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어머니도 내 손에 쥐고 있는 배추를 뜯어 한 입 베어 물고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재래시장의 정겨운 맛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매년 같은 곳에서 배추와 무를 사지만 그래도 가격은 흥정하게 된다. 아저씨와 어머니가 가격을 흥정하는 동안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는 아주 살짝 데이트가 이루어진다. 

시원한 배 한 조각을 깎아 나에게 내밀고 나는 그 과즙 풍부한 배를 먹고 달달한 배즙 맛에 고개를 끄떡인다. 

아주머니도 베어 물고 환하게 웃는다. 아주머니의 쌍꺼풀 진 흑진주 같은 예쁜 눈동자와 마주치면 이제 사춘기를 맞은 소년인 나는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를 모른다. 

어머니와 아저씨의 가격 흥정이 끝나고 나면 이제 아저씨가 한가한 시간에 집으로 배달해 주시는 일만 남는다. 

시장에서 장보는 일은 음식을 만드는 제일 첫 발걸음이다. 


김장을 담글 때에는 붉은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 김치만 만드는 게 아니다. 

겨울 동안에 먹을 물김치도 함께 만든다.  

우리 집은 동치미보다는 나박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동치미에 메밀국수를 말아먹는 게 막국수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 집은 나박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먹는다. 나박하게 썬 배추와 메밀을 함께 먹으면 메밀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과 배추의 아삭하면서 톡톡 튀는 상큼함으로 기름진 녹두 빈대떡에 자연스럽게 손이 더 가진다. 

무와 배추를 나박나박 썰어 만들었다고 나박김치라고 말한다. 얇고 네모진 납작한 모양의 순 우리말이 아름답고 정다운 느낌을 준다.

뭐 특별한 재료라 해봐야 알배추와 무 그리고 단맛을 내기 위해 배를 조금 썰어 넣고 물을 붓고 얼마간 삭히면 겨울 동안 먹기 좋은 물김치가 완성된다. 

장독대에 고이고이 담아 놓은 나박 물김치 겨울 식탁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 특히 설 명절이 되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 때에 그 어떤 김치보다 개운함을 던져 준다.


어머니는 추운 마당에 나가셔서 장독 덮개를 열고  반쯤 얼까 말까 한 나박김치를 들고 오신다. 차가운 바람에 긴 월남치마와 솜을 누빈 두터운 옷을 입으시고 바깥 찬 공기에 벌겋게 익은 듯한 손에는 물김치 그릇이 들려 있다. 얼른 달려가 엄마 손에 들려 있는 그릇을 조심스럽게 받는다. 어린 아들의 작은 행동에 어머니의  눈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어머니 옆에 자석처럼 찰싹 붙어 썰어 놓은 무도 한 조각 베어 물고, 썰어 놓는 배도 한 입 속 넣고  뜯어 놓은 알배추도 한 장 우적우적 씹는다. 귀찮다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아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이시는 어머니에게 참새가 째잘거리듯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말없이 듣고 계시다가 

"그랬어! 그래 어떡하니? 잘했다. 네가 잘못했네!"라고 맞장구치시며 말 추임새를 내가 말하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장단을 맞춰 주셨다.

 혼자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는 나의 재잘 거림 덕분에 심심한 줄 모르신다. 나는  입속에 감도는 달달한 느낌 알배추와 알싸하고 감칠맛 난 무를 물 대신에 먹어 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봇다리를 풀어놓는다.  

 

물김치의 맛이 어느 정도 익어가고  연말이 다가오면 기다리던 방학이 코 앞에 와 있다.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며칠 차이가 나지 않으니 즐겁고 들뜬 마음은 어찌할 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 그 때문에 마음은 들떠 있다.  특히 이때쯤 어른이 시키는 심부름은  칼 같이 잘 듣는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시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나 그렇지 않으면 12월의 마지막 날 저녁이 되면 우리 집은 잔치 집에 된다. 

아버지는 부산에 살고 계시는 가까운 친척과 아버지 밑에서 일하시는 직원 중에 오래 함께 하신 분들의 가족들을 불러 놓고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조촐한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시기 때문이다.


그날도 방학을 한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다. 나도 아침부터 어머니의 일손을 거들었다. 잔 심부름은 거의 나의 차지가 된다.  

두부를 사 오너라 파를 사 오너라 하면 자전거를 타고 쏜살 같이 집 근처의 재래시장으로 간다. 

바람 많은 부산에서 자전거에 속도를 내고 달리면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얼굴을 할퀴고 사라진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할 나이니 차가운 바람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집으로 온 종고모와 오촌 당숙모를 붙잡고 음식 준비를 시작하신다. 일 년에 두 번, 여름휴가를 전후하여.  크리스마스 혹은 12월 마지막 날에  늘 이렇게 음식을 만드신다.

어머니와 아버지, 특히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뭔가 불어 먹이는 일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도 영 싫어하시지는 않았지만 꼭 어머니의 음식으로 준비하라고 하시니 뭐 그다음은 말해 뭘 하겠나. 

거실에 앉아 고모와 숙모와 함께 온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으면 어머니는 나를 부른다. 이제 우리 집의 대표 음식인 녹두 빈대떡을 만들 시간이다. 

아기 돌봐 주는 일을 남동생과 여동생이 번갈아 하고 나는 어머니를 도우러 부엌에 간다. 

전날에 초록 녹두를 물에 불려 놓으신다. 아침이 되면 초록 껍질이 물에 불어 노란 알갱이는 밑에 가라앉고 초록 껍데기는 물 위에 둥둥 떠 다닌다. 

그렇다고 껍질이 모두 다 까지지는 않는다. 그 껍질을 제거하는 몫도 역시 내 몫이다. 어머니와 숙모 고모가 음식 준비를 위한 전초전이 시작될 때 나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껍질을 깐다. 엄지와 집게 사이에 녹두를 놓고 문지르면 껍질은 서서히 물 위로 떠오른다. 

한 가지 고역이 있다면 겨울의  차가운 물속에 손을 넣는다 게 조금 못마땅하지만 맛있는 빈대떡을 먹을 수 있는 기쁨에 충만하여 얼마든지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동생들은 여전히 어린아이들을 돌 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벌벌 기어 다니는 아이들은 얼마든지 돌볼 수 있다. 아버지는 바로 이런 모습을 좋아하셨다. 세상에 눈 닦고 찾아도 같은 피를 나눈 이들이 제일 가까운 것이라고 하시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씀을 늘 빠지지 않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에 느끼 지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버지가 왜 그토록 가족 친척을 강조하셨는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뒤늦게 깨닫는다.  


노란 병아리 털 같은 녹두를 맷돌에 간다. 아직 어린 중학생이지만 힘을 쓴다. 커다란 대야에 단단한 나무를 걸치고 거기에 맷돌을 올려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잡는다. 

음식도 생명이 있는지, 눈이 달렸는지 믹서기에 가는 녹두의 맛과 맷돌에 가는 녹두의 맛은 분명히 다르다. 

곱게 갈리는 믹서기가 오히려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만 기계의 힘으로 녹두를 갈면 녹두가 가지고 있는 향과 구수한 감칠맛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거의 느낌이 와 닫지 않는다. 한동안 어머니도 힘이 드시는지 믹서기에 녹두를 갈았지만 맛이 나지 않는다 하시며 힘들어도 맷돌에 가신다. 재료가 가지는 본연의 맛은 사람의 손에 좌우된다. 모든 음식이 다 손을 거쳐야 맛이 살아있다. (요즘도 나는 아내의 눈총을 받으며 마늘을 칼도마에 올려 칼로 다진다. 기계에 간 마늘은 어쩐지 풍미가 없다.)

맷돌로 갈면 약간 투박하게 갈리기는 해도 녹두 본연의 향과 맛이 살아 있어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맷돌은 우리 전통의 도구지만 지혜가 있는 도구이다. 맷돌을 돌릴 때 너무 느리게도 너무 빨리 돌려도 나무에 바쳐 놓은 맷돌이 흔들릴 수 있다. 중용의 마음이 없다면 맷돌을 돌리다가 크게 낭패를 본다. 

천천히 부드럽게 돌려야 흔들리지 않고 곱게 갈린다. 

평안도식 빈대떡에는 잘게 썬 김치가 들어간다.  

묵은 김치를 잘게 썰어 함께 섞는다. 그렇다고 너무 쉬어 꼬부라진 김치는 신맛이 강해 녹두와 고기 맛을 흐리게 만든다. 

너무 시지도 그렇다고 너무 설 익지도 않는 김치가 빈대떡의 맛을 만든다. 거기에 숙주나물과 고사리를 넣고 양파도 얇게 썰어 넣으면 우리 집만의 녹두 반죽이 완성된다. 

녹두 빈대떡의 고소한 맛은 역시 돼지고기에서 나오는 기름진 육즙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식 빈대떡은 고기를 썰어 위에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우리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갈아서 녹두 반죽에 섞는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 특히 육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느끼한 식감이 먼저 느끼기도 한다.  

녹두빈대떡은 전통적으로 돼지비계를  녹여 구워 낸다.  비계 기름을 조금 넉넉하게 녹여서 튀기듯 구워야 맛있다. 그래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녹두빈대떡이 만들어진다. 바삭한 겉 식감과 촉촉한 속 식감이 비계의 고소한 맛을 함께 느낀다. 

팬에 기름이 약간 흥 근하다 할 정도로 기름을 녹인다. 

어머니는 만들어진 반죽에 커다란 국자를  푹 떠서 팬에 올린다. 

'지~익'하는 기름 끓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와 비슷하다. 

기름을 두른 빈대떡을 처음 넣을 때 기름 튀는 소리는 세차게 '쏴~아' 하고 내리는 여름 비 느낌이 들고 익어 갈 쯤의 기름 끓는 소리는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릴 때 "후드득" 하며 내리는 빗소리처럼 들린다. 이제 익어 들어낼 쯤에는 비가 그칠 때 나는 "툭 툭 툭" 하는 소리와 흡사 해 비가 오는 날은 기름에 구운 전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 빈대떡 테두리가 갈색으로 변해 간다. 익어 가고 있음을 알려 주는 모양이다. 그 찰나에 어머니는 뒤집게로 한 번에 착 뒤집으신다. 그리고 다시 요란한 빗소리가 들린다. 

"쏴~아! 치~익! 툭 툭 툭!"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침 넘어가는 꿀꺽하는 소리가 귀를 통해 머리로 전달된다. 

큰 팬에 세 개씩 굽는다. 첫 빈대떡 세 개가 기름을 흡수하는 한지 위에 깔린다.  

사방으로 퍼져 가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녹두 익어 가는 구수한 냄새가 허기진 배를 요란하게 진동시킨다. 

이제 고모와 숙모들이 들러붙어 빈대떡을 굽기 시작하고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예쁜 접시에 세 장의 빈대떡을 올려놓고 잘 익은 익은 나박김치를 예쁜 유리그릇에 담고  복잡한 부엌을 벗어나 거실 탁자에 올려놓으신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맛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다. 어머니가 바쳐 오는 쟁반을 얼른 받아 탁자에 올려놓는다. 어머니는 

"아이고! 빈대떡에 걸신들린 놈아!" 하면서 웃으신다. 

탁자에 올려놓은 갈색 빛 잘 익은 녹두 빈대떡 세 개가 어서 날 잡수셔 하고 노려 본다. 

예쁜 그릇에 담긴 나박김치의 차갑고 신선한 냄새가 기름 냄새와 용호상박을 이루고 있다. 의외로 남동생은 빈대떡을 즐기지 않는다. 한 배에서 낳지만 닮지 않는 것도 있다. 

이제 어머니 심부름은 할 게 없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놀러 나가고 없다. 집 안에 남자라고는 나뿐이다. 

맷돌 돌리는 큰 일도 했으니 시식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실없이 희죽 거리고 어머니는 어서 먹어보라고 재촉하신다. 아무리 그래도 할 것은 한다고 텔레비전을 틀고 나는 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쪼개어 한 입 쏙 넣는다. 한 입 가득  들어간 빈대떡이  웃니와 아랫니에 붙는 순간  거대한 파도가 바위를 집어삼킬 듯이 입속을 요동치며 게슴츠레 떠있던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녹두의 맛이 혀 끝에 전해지면 알싸한 맛과 감칠맛이 입 안에 가득하며 풍미를 더 해 준다. 녹두 향과 김치의 향이 확 퍼지고  다진 고기가 입에 톡톡톡 터지듯이 씹힌다. 

나는 녹두 빈대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오묘하고 신비한 맛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맛의 향연을 펼친다. 지진이 지난 간 뒤 여진이 몰려오듯 숙주나물과 고사리 양파의 야채 맛이 두 번째로 내 입을 진동하면 강하게 몰려왔던 맛을 조금 진정시켜 준다. 

바로 그 순간 시원한 나박김치 국물 한 숟갈을 떠먹는다. 그렇게 휘몰아치던 폭풍을 잠재우는 듯한 나박김치의 맛이 입안을 평정한다. 

집안의 장손이 먹고 그 맛에 엄지 척하는 순간 다들 음식을 만든다고 앉을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인 시간을 잠시 접고 식탁에 앉아 허기진 배를 바삭하고 촉촉하게 구운 빈대떡 몇 점으로 달랜다. 

어머니는 늘 음식 맛을 나에게 물어보셨다. 맛있다고 엄지 척하면 

"네 입이 어디 입이냐 뭐든 다 맛있다 하는 먹돌아!" 하시고 웃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내가 맛있다고 하면 정말 다른 사람들도 다 맛있다고 인정을 하는 맛 감별사 가 아닐까

(요즘은 아내가 나에게 맛을 보라고 말한다. ㅋㅋㅋ)

저녁에 밖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일가친척이 모두 집으로 모인다. 아버지는 늘 가 가까운 사람들부터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그래서 일 년에 두어 번 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시던 아버지 나름의 그 전통대로 모두 모여 있는 모습을 흐뭇해하신다. 오늘따라 집 안이 꽉 찬 느낌이다. 

다들 저물어 가는 한 해의 아쉬움을 술 한 잔에 떠나보낸다. 빈대떡과 잡채를 넣은 불고기 전골에 김치가 전부인 조촐한 식탁이지만 모두 모였다는 덕담을 나눈다는 사실이 즐거움을 더한다. 

아버지도 즐거우신지 연신 술잔을 기울이시고 평소에 근엄하시던 아버지도 몸과 마음을 편히 쉬어하시는 자세이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거의 한 세대가 지났다.  이제 아버지는 저 머나먼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계시고 어머니도 이제 구순을 바라보신다. 

이제는 그 시절처럼 모여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계시지 않고 어머니의 연세는 구순을 바라보신다. 

모두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그 시절 구심점을 만들던 아버지도 계시지 않고  다들 삶의 무게에 흩어져 지내다 보니 어쩌다 집안 잔치나 있어야 보게 되었다. 

나 역시도 부산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일 년이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본가에 가서 어머님을 뵙는다. 


가기 전 전화를 드리고 어머니에게로 간다. 

내가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면 오십이 훌쩍 넘은 여동생이 경을 친다. 못난 아들이지만 그래도 장남이 집에 온다고 좋아하는 녹두 빈대떡과 물김치를 담가 놓으신다. 여동생의 손을 빌려.

옷도 벗기도 전에 어머니는 팬에 따뜻하게 해 놓은 빈대떡을 식기 전에 먹으라고 성화시다. 역시 돼지비계로 구운 빈대떡의 고소함이 아직은 살아 있다.

이제 맷돌 돌릴 사람도 없으니 믹서기에 녹두를 간다. 맛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빈대떡의 맛이 크게 변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먹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은 아직도 중학생 까까머리 어린 아들이다.

맛있게 먹고 있는 나에게  

"맛없지?"

"아니요 오마니! 맛있어요! 역시 녹두빈대떡이야요!"

라고 대답하면 

"에라 이놈이 네놈 입이 입이냐!" 하시며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신다. 

그 말에 여동생도 옛날 생각이 나는지 덩달아 웃는다. 

예쁜 유리그릇에 담겨 있는 나박김치 국물을 단숨이 들이마신다. 

막혔던 속이 뻥하고 뚫린다. 


어머니의 음식은 그저 한 끼 배를 채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음식 속에는 사랑이 녹아들어 있다. 그 어떤 재료로도 맛을 낼 수 없는 마지막 비법은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맛이다.

가족을 위해 험한 세상에 아무 주저함 없이 당신을 던지신 아버지와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의 삶을 당연한 듯이 받고만 살았다. 

빈대떡과 나박김치는 그저 평범한 음식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가족의 화합과 어머니의 사랑이 표현된 음식이다. 

가족과 친척들의 화기애애했던 그때 그 시절의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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