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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Aug 06. 2020

사주 이야기

모든 것이 팔자소관이다!

힘든 일을 겪거나 남의 불행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가 있다.

'에이그 다 팔자소관이야!'

 그 말속에 팔자 즉 사주팔자가 등장한다. 

사주팔자는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주팔자를 믿고 운명은 정해졌다고 믿는 쪽에 속하는 사람과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쪽을 믿을까?

운명이니 사주를 믿는 사람들은, 삶은 이미 정해졌다고 믿으니 삶을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가려고 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삶을 어떻게 하든 헤쳐나가 기어코 무언가를 이루고 자신 있게 운명을 이기고 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떤 생각이 옳고 어떤 생각이 그르다고 말하지 못한다. 각자의 체험과 각자의 신념에 따를 수밖에.

사주팔자는 말 그대로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육십갑자로 바꾸어 그 육십갑자의 오행이 계절과 연관되어 사람의 일생을 볼 수 있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주팔자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니 그전에 사람은 자연의 거대한 힘에 두려움을 가졌고 자연이 움직이는 법칙을 알게 되었다. 차츰 자연을 예측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예측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사주를 연구하는 사주 명리학은 사람의 일생을 자연이 순환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에서 생겨 났다. 


순환하는 자연 속에 일생이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졌다.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인간을 고찰하였고 인간은 결국 어떤 틀에 매어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고 했다.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는 말이다. 


근대 서양 철학은 신의 존재를 그다지 믿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람은 그저 우연히 태어나 인과 관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 움직이고 소멸된다고 보고 있다. 


사주를 믿든 믿지 않던 사람은 자신의 살아가는 미래가 많이 궁금하다. 

아닌 척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때로는 그런 일이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주팔자를 믿고 믿지 않고는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


사람은 생김새가 다르게 태어나듯이 살아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으로 모든 사주팔자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든 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순간 주변에서 하는 소리는 

"다 팔자소관이야!"

라는 말로 좌절에 대해 위로를 한다. 

사주명리학을 일부 종교인들은 삿된 학문이고 그 사주를 공부하고 설명하는 사람을 사주쟁이라고 폄하하는 말을 한다. 

학문이라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사주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사주 공부도 자신을 다듬고 고치는 자기 수양의 도구일 수 있다. 

한계를 알고 한계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길을 알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욕망 때문에 자신을 쓰러지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닦는데 이만한 공부도 없다. 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지만 마음공부에 꽤 괜찮은 공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 넘어간다. 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가끔 내가 하는 공부에 도움이 되게 하시려고 자신이 사주를 본 경험과 아는 지인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셨다. 


어느 날 사주를 보러 온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공부할 때 선생님 말씀이 의외로 혼자 사주 보러 오는 남자들이 꽤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약간 낡은 국민복 스타일의 점퍼 차림에 얼굴에 표정이 없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보통 키의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선생의 지인을 찾아왔다. 말투로 봐서는 그리 배움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단다. 손은 물에 불은 듯 손가락은 벌겋게 보이고 여기저기 칼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쭈빗쭈빗 들어오는 그는 자신감이 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눈빛은 안정되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내어 놓은 사주의 팔자에 재물운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만 사주에 식신 상관의 기운(자기 자신이 나무의 오행이면 불의 기운이 식신 상관이다)이 태어난 날의 자신의 오행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 사주에 대운이 잘 흐르고 있어 먹고사는 일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 사주였다. 

식신과 상관의 사주에 영향을 주었다. 음악 미술 예체능으로 밥을 먹고 살 사람이지만 사주에 초년운이 바쳐 주지 않아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고 한다.

 혹시 음식을 다루는 일을 하냐고 했더니 그 사람의 작은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해하더란다. 어디 가서 물으면 항상 그런 말을 해 주길래 음식 다루는 일이 팔자려니 했단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이 그것은 신통 방통 한 일은 아니며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의 오행에 숨어 있고 그 오행을 읽을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사주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다른 골목이나 힘든 상황에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여 찾아오는 것이니 전체 사주의 흐름을 이야기해 주면 된다. 그 사람에게  사주의 운이 잘 흐르고 있으니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있으면 크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른 일에는 눈도 돌리지 말고  변화를 주지 말라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해 주었다고 한다. 

사주에 재물이 바쳐 주지 않고 있으니 크게 무리한 일도 하지 말라는 당부 말이 떨어지자 그도 사주가에게 몇 마디 넋두리를 했다. 

자기가 어린 시절 공부 못했던 일 가난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일 같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더란다. 보통이면 대충 이야기를 듣고 보내었겠지만 선생의 지인이 호기심이 생겨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려고 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내린 결론은 사주대로 살기는 산다였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은 사주를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야기였다는 말로 결론을 내었다. 

그는 작은 중국 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중학교도 중퇴하고 무작정 도시로 올라와 배고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고민하다가 음식 하는 일을 배우면 배는 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중국집 배달부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세계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는 배달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이야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니 신속하게 배달을 해 면이 그다지 불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모두 자전거로 배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짐자전거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자전거 똑바로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거기에  싣고 여기저기 배달을 다녔다고 한다. 

그는 배달을 마치고는 뒤늦은 점심으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는 했다. 그 맛있는 자장면을 그는 먹지 않는다. 그 어렵던 시절 자장면을 물리도록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주에 예체능의 기운이 있고 예술과 통했으나 운이 따라 주질 않았다. 그러나 사주팔자 속이지 못한다고 음식 다루는 일을 하게 되었고 모질고 힘든 배움의 과정을 밟아 지금의 위치에 왔다. 

그때 오십을 넘긴 그 중국집 사장은 일 년에 한 번 혹은 어디 잘한다고 소문이 나는 곳에는 쉬는 날을 택해서 찾아다니곤 했단다. 

사주 이야기를 듣고 그가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 던진다. 

젊은 시절에는 운명이나 사주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긴 여행 속에서 산 넘고 물 건너가고 평탄한 길을 걷기도 하고  비탈진 길을 걸어 보고 주변에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니 인생은 어떤 정해진 길에 따라간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는 자신의 아내나 자식들이 그런 것 뭐 하러 보냐며 핀잔을 들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운세를 보았다.

그가 자리를 뜨면서 

"선생님은 팔자를 알아서 잘 대처하시나요?" 하고 묻더란다. 

그분의 대답은 

"팔자는 피할 수 없더이다."

듣고 문을 나서는 그 중국집 사장님도 

"그러게요!"
하며 웃으며 자리를 떠나더란다.

가끔 사주팔자를 쳐다보는 명리학을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연과 필연은 어느 정도 같이 간다고 생각을 한다. 그 우연과 필연이 서로 교차하며 인생을 만들어 간다.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지 궁금해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나는 구보다 잘할 수 있는데 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과감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너무 나간 경우가 생긴다. 결국 쓴 맛을 본다. 사주는 등대다. 그저 그 불빛을 보고 자기의 갈 길을 의지한다.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수천 년 동안 학문의 맥을 이어왔다.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다. 

팔자!

타고난 인생의 몫을 욕심 내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그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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